May 2023

News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다시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⑥ 이미지기사 20세기 미술은 '전위정신'으로 무장한 추상이 승리했다. 한국도 흐름을 놓치지 않고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찾아가며 국제미술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된 시대를 맞아 전시된 김환기, 유영국, 한묵, 남관, 이응노의 작품은 한국미술을 이끌어나가는 추상의 무게와 역할을 관람객에게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조각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위해 재료를 깎아낸 흔적이 남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김종영-한국 추상조각을 대표하는 김종영은 1953년 런던 테이트갤러리에서 열린 조각전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다시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⑤ 이미지기사 이성자,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아이들 먹이고 입히는 상상세 아이의 엄마인 이성자는 이혼하고 전쟁이 터지며 아이들과 강제로 헤어졌다. 한국에서 살 이유를 잃은 그녀는 우리나라 최초로 파리의 여자 유학생이 됐다. 점처럼 짧은 필치로 붓자국이 찍힌 그림은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아이들 먹이고 빨래해 입히는 상상을 하며 작업했다고 한다. 조국과 가족,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 완성한 작품으로 유럽에서 유명해진 이성자는 15년 세월이 흐른 후 한국 땅에서 그립던 아이들을 만나고 실험적인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박래현, 남편 운보에게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다시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④ 이미지기사 분단 70년 동안 이산(離散)의 미술사가 탄생했다. 전시회는 월북작가의 유산을 다시 보여주는 기획으로 통일의 미술사로 가는 길을 관객에게 안내한다. 이쾌대, 김일성과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린 포로이쾌대가 중절모에 두루마기를 입고 관람객을 응시하고 있다. 서양의 팔레트와 동양의 붓을 양손에 들었고 이국적인 풍경과 항아리를 머리에 얹고 가는 한국의 풍경이 함께 있다.LACMA(LA카운티미술관)에 전시됐을 때 방탄소년단 RM이 SNS에 인증샷을 남기며 관심을 모았다.이쾌대는 6・25 때 피란하지 못해 김일성과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려야 했고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다시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③ 이미지기사 박수근, 물감 위 요철을 채색하고 말리는 여덟 번의 반복으로 탄생한 인간의 진실함박수근은 질감을 내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물감을 바르고 그 위에 요철을 내고 채색하기를 여덟 차례나 반복해 완성했다. '미석(美石)'이라는 호와 닮은 작품들은 어느 작가의 작품과 함께 있어도 눈에 띈다. 박수근에게 예술은 평범함이다. "화가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다채롭지 않고 단순하다.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장욱진, 아내의 헌신으로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다시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② 이미지기사 이인성, 잊혀진 천재화가이중섭, 김한기, 박수근과 또래 화가인 이인성은 1920, 30년대를 풍미했다. 당시 인기 화가의 등용문이던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여섯 번이나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시간이 흐르고 전람회가 일본인이 구성하고 평가했다는 것으로 작품성을 의심받았고 우리 정서를 수려하게 표현했다고 평가받은 작품들도 빛을 잃어갔다. 서른아홉에 총기 오발 사고로 요절했다. 이중섭, "예술은 진실의 힘이 비바람을 이긴 기록이다"〈회색 소〉는 〈가족과 비둘기〉와 함께 그려진 양면화다. 일본유학 시절 마사코를 만나 결혼해 두 아이를 낳은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다시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① 이미지기사 여름처럼 따갑던 봄날 소마미술관. 아는 그림으로 착각하게 되는 작품들을 만났다. 서울올림픽 35주년을 기념해 근현대미술사 주요 작가 25명의 작품 160여 점을 소개하는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Re_SPECT: Korean Modern Art)〉.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김환기, 유영국의 '낯선' 그림이 즐비하다. 전공자도 못 봤던 작품도 있다. 뜻있는 사람들이 수장고 문을 열어준 덕분이다. 지난해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노실의 천사〉에 소장품을 출시했던 BTS RM도 권진규의 드로잉 〈달을 보는 기사〉를 출품했 히말라야의 눈물⑭ 행복한 바리스타 자무나 구렁 이미지기사 포카라 시내 '스타커피(STAR COFFEE)'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자무나 구렁(Jamuna Gurung)은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쓰리시스터즈에서 포터 일을 배웠다.오빠는 남자라 부모님이 학교에 보내줬지만 구렁은 혼자 힘으로 공부해야 했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폭행을 일삼았다.탈출구가 보이지 않았지만 스스로 돈을 벌어 공부하면서 강해졌다. 여자 포터나 가이드를 깔보고 무시하는 남자들 중엔 대놓고 "하룻밤에 얼마냐?"고 물어보는 나쁜 이들도 있었지만 구렁은 꿈을 위해 참아냈다. 그때마다 여성 트레커들의 응원이 힘이 됐다. 그렇게 한 히말라야의 눈물⑬ "당신 뒤에 우리가 있다!" 이미지기사 "당신 뒤에 우리가 있음을 절대로 잊지 마라!"20년 전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온 엄마도 있었다."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남편이 죽이려 했다더군요. 지금은 딸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엄마와 같이 여기서 일하고 있답니다."세자매는 찾아오는 여성들에게 침대를 마련해주고 6개월까지 머물게 했다. 글도 가르쳐 주고 트레킹 가이드 훈련도 했다.코로나와 지진으로 문을 닫기도 했다. NGO와 사업체를 같이 운영하며 버티고 있다. 지금은 대학에 다니는 여성들도 지원하고 있다. 초창기 멤버들이 그들에게 멘토링을 해주기도 한다."'차별은 어쩔 수 없어'로 히말라야의 눈물⑫ 쓰리시스터즈의 도전, 세자매는 용감했다 이미지기사 세자매가 운영하는 '쓰리시스터즈(3sisters)'는 여성 트레커들에게 여성 가이드와 포터를 연결해 준다. 인도에서 유학한 세자매는 1990년대 초 포카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여성 트레커들로부터 "남성 가이드와 포터가 성희롱을 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고민 끝에 네팔의 가난한 여성들과 해외에서 온 여성 트레커를 연결해주기로 했다.처음엔 힘이 들었다. 롯지에서도 트레커에게만 방을 내주고 여성 가이드와 포터는 부엌 같은 데서 남성 가이드와 포터들 틈에 끼어 자야 했다.가난한 네팔 여성과 해외서 온 여성 트레커 연결, 히말라야의 눈물⑪ "깔리 회장님은 길러준 엄마" 이미지기사 "2014년 공정무역포럼 때 어머니와 한국에 갔는데 한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우리 전통옷과도 어딘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죠."카드까는 한국과 네팔이 언어와 음식 문화도 통한다고 생각했다. 존댓말 있는 나라가 드문데 그것도 두 나라의 닮은점이다. '나마스떼'를 어른에겐 '나마스까'라고 해야 한다.람 깔리는 2014년 케냐에서 열린 패브릭전시회에서 시각장애인이 실을 뽑아 천을 짜는 걸 보고 위즈도와 우븐도 장애인을 고용해야겠다고 결심했다. 30년 베테랑과 함께한 협동심이 경쟁력위즈도에서 가장 오래된 직원인 산티는 포카라에서 차로 세 히말라야의 눈물⑩ 우븐엔 스토리와 자긍심이 있다 이미지기사 람 깔리의 고향인 혼나는 네팔 관지까지 16시간 차로 가서 비행기로 45분을 이동하고도 이틀을 걸어야 갈 수 있는 오지다.카드까는 제품군을 의류까지 확장하면서 어머니 고향에서 재료를 수급해 지역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영세한 업체들이 디자인을 베껴도 카드까는 눈감아준다. 누가 팔든 네팔의 가난한 여성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다. 이왕이면 더 좋은 디자인으로 네팔 제품 전체의 품질을 끌어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거금을 들여 디자이너를 해외 유학까지 보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그래서다.코로나 때 월급 주기 위해 땅까지 히말라야의 눈물⑨ 동료애로 엮어 새 삶을 디자인하다 이미지기사 "남편이 때린다", "남편이 술 먹고 돈을 안 준다", "애들 학교 보내야 하는데 공책 살 돈도 없다", "집에 먹을 게 없다"며 찾아온 여성들을 먹이고 재워주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교육을 마치고 일을 시작하면 삶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가정폭력을 당했거나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가 됐거나 첩으로 사는 여성을 우선 채용한다. 다리를 못 쓰거나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도 검수실에 근무한다.위즈도는 그들을 동등한 직업인으로 대우한다. 네팔통신원이 큰 자루를 두 개나 들쳐멘 직원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두 자루를 가져다주면 한 자 히말라야의 눈물⑧ 가난한 여성들 명장으로 키우는 위즈도, 우븐 이미지기사 포카라에 있는 네팔여성기술개발기구 '위즈도(WSDO)'는 수익사업도 하고 있다. 가방, 액세서리, 커튼, 숄 등 수제품을 만들어 파는데 같은 제품을 만드는 자회사 '우븐(WOVEN)'도 있다.위즈도를 설립한 람 깔리(Ram Kali Khadka)의 아들 어눕 카드까(Anup khadka)가 우븐을 경영하고 있다. 위즈도는 주로 커튼 같은 큰 제품을 제작하고 우븐이 나머지를 맡는다.두 브랜드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20명 가까운 여성이 일하고 있다. 코로나 전에는 30명에 달했다. 포카라에 직영매장도 가지고 있다.본사 디자이너가 히말라야의 눈물⑦ 바느질로 상처 꿰매고 희망 짜기웠다 이미지기사 6・25때 태어나 늘 배가 고팠던 수녀는 아이들이 배고픈 걸 해결하는 것만 해도 큰일이라고 생각했다.아이들에게 밥을 실컷 먹이고 학비가 없어 쩔쩔 매는 아이들을 돕는 것을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였다. 수녀가 돌봐주어 바느질 자격증을 딴 아이는 바느질 선생님이 됐다.폐가 같던 재봉학교를 한국사람들이 힘을 모아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고쳤다. 가정폭력을 당하면 도망갈 데가 필요하니 장소를 마련해 주고 재봉수업도 해줬다.2017년까지 쉼터엔 전기도 수도도 없었다. 하수구도 없어 바닥엔 늘 구정물이 흘렀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그 위에 히말라야의 눈물⑥ 먹고살 원조 넘어 자립 위한 교육 절실 이미지기사 예전엔 5,000만 원만 내면 네팔에 한 사람이 이민 올 수 있었다. 지금은 3배가 넘는다. 영주권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네팔 남자와 결혼한 외국 여자에게는 몇 년이 지나면 국적을 주지만 외국 남자가 네팔 여자와 결혼하는 경우에는 영주권도 나오지 않는다.아이를 낳은 후에도 해마다 혼인증명서를 갱신해야 하는데 아내가 가족란에 사인하지 않으면 집도 뺏기고 쫓겨난다. 한국은 개발시대에 여성의 노동력을 적극 활용했다. 네팔은 여성의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오 대장은 "한국에서 자란 나도 힘들었는데 네팔 여자들은 얼마나 히말라야의 눈물⑤ 은행계좌 만들기도 어려운 여성들 이미지기사 네팔에서 은행계좌를 개설하려면 아버지는 물론 할아버지 이름까지 써야 한다. 여성은 결혼하면 남편 성으로 바뀌어 시할아버지까지 증명하지 않으면 계좌를 만들 수 없다.네팔통신원도 2014년 스탠다드차타드에서 계좌를 만들 때 보증인과 할아버지 이름이 필요했다. 계좌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대출은 말할 것도 없다.대출이 된다 해도 이자율이 15%에 달해 차라리 상호금융을 이용한다. 한인이 운영하는 '윈드폴게스트하우스'는 동네 호텔이나 음식점에 돈을 빌려주고 일수를 찍는다. 간섭하지 않는 대신 원조 스스로 받아야 하는 나라노벨평화상을 받은 ' 히말라야의 눈물④ 갈 곳도 일할 곳도 없는 여성들 이미지기사 네팔은 자원도 부족하고 바다도 없다. 공산품은 거의 없어 수입해 써야 하고 농산물은 수출할 만큼 풍족하지 못하다. 셰르파나 포터 등으로 일하거나 옛 스위스처럼 다른 나라의 용병으로 나가는 사람도 많다.배우지 못한 여성이 돈을 벌 방법은 거의 없다. 간호사나 교사 같은 전문직은 말할 것도 없고 단순사무직이나 가사도우미도 되기 힘들다. 가사도우미도 해본 사람이 계속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 현지인 가사도우미 중엔 "한국인 집에서만 10년 일했다"는 경우가 많다.네팔통신원의 아버지는 경험이 없는 가사도우미를 들였는데 전기밥솥을 통째 히말라야의 눈물③ 가난이 낳은 어린 미혼모 이미지기사 포카라 옛 공항 터 뒤엔 한국의 쪽방촌 같은 빈민가가 있다. 여기서 만난 노파는 딸 둘과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들의 아빠가 누군지 몰랐다. 작은딸은 노산인데다 알코올중독일 때 낳아 1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았다.노파는 여전히 낮에도 술을 마신다. 노파를 돌보던 큰딸도 최근 출산으로 일을 못하게 됐다. 남편은 건장한데도 일을 하지 않는다.네팔은 여성차별이 심하다. 초등학교도 남자아이들은 6년은 다니게 해주지만 여자아이들은 4년도 다니지 못해 문맹이 많다. 월경 때 우리 같은 곳에 격리하는 '차우파디'와 조혼이 금지됐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히말라야의 눈물② 에베레스트 등정보다 값진 바리스타자격증 이미지기사 네팔 소녀 자무나 구렁(Jamuna Gurung)은 포터 겸 가이드로 돈을 벌면서 궁금했다.'저 사람들은 왜 돈을 내고 위험한 산에 오르는 걸까?'구렁이 등반가의 높은 이상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등반가들도 구렁의 깊은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다. 산만 보는 그들에게 통계와 기사는 숫자와 문자일 뿐이다.한 해 1만 명의 소녀가 매매되고 소년들의 꿈이 용병인 나라. 생리 중인 여자아이가 우리에 격리돼 독사한테 물려 죽고 불가촉천민 남자아이가 찻잔을 만졌다고 죽임을 당하는 나라. 그래서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공허한 나라.서구 히말라야의 눈물① 네팔은 가난하다. 여성은 더 가난하다. 소녀는 가장 가난하다 이미지기사 2차대전 당시 미군이 귀환한 전투기들의 날개와 꼬리에 탄흔이 집중된 것을 보고 그 부분을 보강하려 하자 통계학자 에이브러햄 왈드는 정반대 의견을 냈다."몸통에 총격을 받은 전투기가 추락해 돌아오지 못한 사실을 간과했다. 약점은 동체다!"아우슈비츠는 유대인학살의 대명사이지만 실제로는 벨제크, 소비보르, 트레블린카 같은 수용소에서 더 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다. 생존자가 가장 많았던 아우슈비츠가 생생한 증언 때문에 오히려 가장 잔인한 수용소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산악인 오은선 대장도 이 '생존자편향오류(Survivorship Bias)'를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