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금감원은 2년간 DGB대구은행 56개 영업점의 직원이 문서를 위조해 고객 몰래 1,657개의 계좌를 개설한 사실을 확인했다. 직원들은 내점 고객에게 증권사 연계 계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뒤 해당 계좌 신청서를 복사해 고객의 동의 없이 다른 증권사의 계좌를 하나 더 만들었다. 계좌 개설 안내 문자를 차단하거나 휴대전화 번호 앞자리를 다르게 적어 안내 문자를 받지 못하게도 했다. 6월 말 미리 사태를 파악한 대구은행은 금감원에 즉시 보고하지 않았고, 이후 8만 명이 넘는 고객에게 은행예금 연계 증권계좌 개설 시 증권계
bhc그룹 지주회사 글로벌고메이서비시스(GGS)가 신임 대표로 bhc 송호섭 대표를 선임했다. 한시적으로 대표를 맡았던 차영수 대표는 GGS 사내이사로 복귀한다. 송 대표는 bhc, 아웃백 등 bhc그룹 계열사 총괄 관리와 지주사 대표도 겸직한다.
카카오가 제 29기 정기 주주총회 및 이사회에서 정신아 대표이사를 신규 선임했다. 정 신임 대표는 카카오 쇄신TF장, CA협의체 공동의장 겸 전략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20여 차례에 걸쳐 1,000명 이상의 임직원과 대면 미팅을 진행하는 등 카카오의 쇄신 방향성 설정 및 세부 실행 방안 수립에 매진해 왔다.이를 바탕으로 정 대표는 AI(인공지능) 중심의 신성장동력 확보, 책임지는 의사결정 구조의 구축을 힘 있게 추진할 예정이다. AI 기술 및 서비스를 집중 강화하기 위해 전사에 흩어져 있던 관련 팀들을 모아 AI 통합 조직을 꾸린다
"내부에서 치유하는 것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다뤄보는 것이 필요하다. 후임자 선정과 양성 시스템이 명확해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금융위원장 시절 우리금융 민영화의 포문을 연 임종룡은 회장 후보로 나서며 '모피아' 논란을 정면돌파했다."관치는 공무원 출신이 민간에 가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원치 않는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논란을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스스로 당당했다. NH농협금융회장을 역임했던 자격과 성과를 바탕으로 평가 받고자 했다. "우리금융 발전을 위해 내 부 후보를 이어가야 하는지, 과도기적 단계에서
"성과보다는 큰 탈 없이 정책의 부작용과 불이익을 당할 계층을 고려하는 균형 감각이 필수지만 민간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나중에 법에 저촉되거나 감사 대상이 될까 창의적인 일을 벌이지 않는 금융권에 사전 면책 여부를 확인해 주는 '노액션레터(No action letter·비규제조치 의견서)'를 만들어 독려했다."공직자들의 복지부동이나 무사안일한 태도는 일을 시도하면서 생기는 실수나 시행착오에도 제재를 받고 책임져야 하는 데서 나온다."정부는 2010년부터 우리금융 지분 매각을 통한 공적자금 회수를 노렸지만 덩치가
"국가경쟁력보다 뒤처진 금융경쟁력을 높이는 것, 그것이 나의 소명이다."2015년 금융위원장에 부임한 임종룡의 일성이다. 임종룡이 진두지휘한 금융개혁은 금융소비자 보호, 금융 범죄 근절, 금융규제 개혁, 금융 기관 건전성 강화, 금융위원회 조직 개편 등 금융 전반에서 일어났다.금융소비자보호실을 신설하고 금융소비자보호법을 개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금융범죄수사단을 꾸려 금융범죄 단속을 강화하고, 금융규제 샌드박스도 도입했다.금융혁신기획단과 금융혁신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금융혁신위원회를 열어 금융기술(FinTech) 발전과 디지털 전환을 위
컴투스가 신임 대표이사에 남재관 사업경영담당 부사장을 내정했다.남재관 대표이사 내정자는 다음과 카카오게임즈 CFO, 카카오 부사장 등을 역임하며 IT 및 게임 업계의 성장을 이끈 경영 전문가다. 경영 기획, 인사, 재무 등 경영 전략 부문과 게임 사업 부문을 총괄하고 있으며, 계열사와 해외법인 관리 및 신규 투자 부문까지 기업 경영 전반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이주환 현 대표이사는 제작총괄대표를 맡아 게임 개발에 전념한다. 개발 부문에 역량을 집중해 글로벌 게임 개발사 컴투스의 명성을 더욱 높여갈 예정이다.컴투스는 사업과 경영 전반
박관호 위메이드 이사회 의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했다.박 의장은 이사회를 통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대표이사 겸 회장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한 것이다.대한민국 1세대 게임 개발자 박 의장은 2000년 2월 위메이드를 설립했다.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PC온라인게임 개발 및 서비스를 진두지휘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박 의장은 개발에 전념하며 경영을 지원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게임과 블록체인 사업의 수장으로서 회사를 이끌어갈 계획이다.위메이드는 와 등을 올해 선보인
임종룡은 외가인 고흥에서 태어나 할아버지가 농사짓는 보성에서 자랐다. 네 살 때 서울에 왔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방학마다 내려가 지냈다. 행시를 패스하고 수습 3개월을 보성 할아버지댁에서 출퇴근했다.하루는 군수를 따라 추곡수매 현장에 나갔다가 할머니를 만났다. "종룡아, 가서 우리 쌀 등급 좀 올려 달라고 하거라." "그건 농협 직원이 알아서 할 일이에요." "그럼 농협에나 가지 고시는 뭐하러 봤느냐?"할머니의 말은 30년 후 현실이 됐다. 임종룡은 2013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됐다. '모피아' 꼬리표는 숙명처럼 따라다녔다. 온
『아버님께서 위독하십니다』 2009년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시작된지 얼마 후 경제금융비서관은 급히 날아든 쪽지를 받고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임종을 못한 '불효자'는 1999년 최연소 은행제도과장에 선임되고 기재부 정책국장과 기조실장을 거친 이명박정부의 '경제해결사' 임종룡이다. 기재부 1차관에서 국무총리실장을 거치며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정책을 마련하고 한·중·일 FTA를 추진했다.천정부지로 뛴 물가를 잡았고 국가부채 관리 체계를 만들었으며 산업구조를 개혁해 내수 위축과 수출 부진을 극복하기
"나는 경제는 아무것도 몰라.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전두환에게 김재익 수석이 있었다면 이명박과 박근혜에겐 임종룡이 있었다.IMF사태 직후 '금융기업구조개혁반장'을 맡았고, 이명박정부에서 경제금융비서관, 기재부차관, 국무총리실장으로 "썰물 때 둑을 쌓아" "밀물 때 부담을 줄였고", 박근혜정부에선 금융위원장으로 금융개혁을 주도했다.기재부 시절 '닮고 싶은 상사'에 세 번이나 뽑힌 덕장이며 "제갈량을 데려와도 안 된다"는 농협을 4대 금융사로 키운 '절절포'(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라)다. 조합장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투자증권을
"바르게 벌어 바르게 쓸 때 돈은 꽃처럼 아름답다."박현주는 '따듯한 자본주의'의 실천을 강조해 왔다.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1998년 '미래에셋희망재단'을 설립하고 2000년 75억 원의 사재를 출연해 만든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통해 20여 년간 꾸준히 사회공헌을 했다.2008년 직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 『2010년부터 배당금 전액을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13년간 실천했다. 누적 기부액은 300억 원에 달하며 기부금은 미래에셋박현주재단과 미래에셋희망재단을 통해 인재 육성과 사회복지사업에 사용됐다."
박현주는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2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을 "2020년 올림픽 '국대'를 2000년 금메달리스트 자녀 중에서 나이 순으로 선발하는 것"으로 간주한 버핏의 말에 동감했다.지난해 박현주는 국가 인재 육성을 위해 미래에셋컨설팅 지분 25%를 미래에셋희망재단에 넣기로 약속했다. 자서전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한국 최고의 (돈)부자'가 되기보다 '최고의 기부자'가 되겠다고 한 약속을 실천한 것이다.기부는 현재 공익법인의 주식 보유와 관련된 규제 등이 완화되는 시점에 진행될 것이며 주식 기부 약속은 2세경영이 아닌
2002년 하버드대에서 밟은 AMP(최고경영자과정)는 박현주를 해외시장에 눈뜨게 했다."후배들에게도 경영 노하우를 배울 시간을 주고 싶다"며 2기 전문경영진 8명에게 하버드와 스탠포드 AMP를 밟도록 했다.미래에셋자산운용은 해외 유망 ETF운용사를 인수합병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2011년 캐나다 ETF운용사 '호라이즌스'(Horizons ETFs)를 시작으로 2018년 미국 '글로벌엑스'(Global X), 2022년 호주 'ETF시큐리티스'를 인수하는 등 열세 번의 인수합병을 추진했다.글로벌엑스'는 세계 최대 ETF시장인 미국에
와디즈가 한국경영학회 주최로 열린 '2024 최우수경영대상' 시상식에서 혁신벤처기업으로 선정됐다.2012년 국내 크라우드펀딩 시장 개척 후 중소상공인과 상생하는 비즈니스 모델 기반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확장하고, 스몰브랜드의 발굴과 육성, 후속 유통을 지원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로 업계를 선도한 공적을 인정받았다.와디즈는 지난해 누적 거래 금액 1조 원 돌파, 6만 건 이상의 프로젝트 오픈 등 성과를 기록하며 국내 대표 D2C(Direct to customer)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와 소
미래에셋증권의 모태는 1999년 자본금 500억 원으로 설립한 국내 첫 인터넷증권사 'E미래에셋증권'이다. 사이버증권사 이미지가 강해 '미래에셋증권'으로 개명하고 뮤추얼펀드를 판매했다.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박현주1호'의 성공에 힘입어 1999년 말 출시해 3,000억 원이나 끌어모은 '박현주2호'는 벤처거품이 꺼지고 증시가 내리막을 타며 40% 가까이 손실이 났다.'한국의 워런 버핏'으로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지만 실패는 또 다른 도전의 발판이 됐다. 박현주는 폐쇄형펀드의 한계를 절감하고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개방형펀드시장
동원증권 입사 10년 만에 최연소 이사가 되고 여의도에서 명성이 자자했을 때 박현주는 사표를 던졌다. 모두가 만류했지만 서른아홉 '김재철키즈'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김재철은 못내 아쉬웠다.박현주는 한국 자본시장에서 의미 있는 일을 저지르고 싶었다. '어떤 회사를 만들 것인가, 어떤 회사가 우리 자본시장의 발전에 필요한가.'회사의 방향부터 정했다. '열린 마음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인재를 중시하자'. '미래에셋'은 박현주의 경영철학을 담은 사명이며 그 이름은 이후 거침없이 세계와 미래로 나아가게 한 나침반이 됐다.박현주는 기회를 노렸
박현주는 대학 2학년 때부터 명동 증권가를 돌며 투자에 눈을 떴다. 1970년대 말 영문잡지를 술술 읽는 남루한 노파가 매일 증권사 객장에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명동사채시장의 큰손 백희엽이었다.박현주는 백희엽의 사무실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다. 증권사와 기업 방문 때도 따라갔다. '정석투자가 제 몫을 해낸다'는 것을 배우고 대학원 때 사설 투자자문 '내외증권연구소'를 설립했다. 주식은 도박으로 여겨졌고 관련법도 없던 시절이었다.동양에서 증권인생을 시작한 박현주는 1988년 한신(→동원)으로 건너갔다. 서른둘에 중앙지점장을 맡으
일제강점기 민족은행은 말살됐고 해방 후 우리 금융은 껍데기만 남았다. 그마저도 전쟁으로 파산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 후 77년. 대한민국 금융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기적을 이루었다. 은행들은 연간 수조 원대 순익을 거두고, 여의도 증권가는 '아시아의 월스트리트' 반열에 올랐으며, 리딩 보험사 한 곳의 자산 규모가 대한민국 한 해 예산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뽕밭이 거저 바다가 된 건 아니다. 원조경제시대 굴욕을 감내했고 개발시대엔 "한국 은행은 정부의 현금인출기"란 조롱까지 받아야 했으며 외환위기 땐 퇴출과 구조조정으로 생존마저
카카오게임즈가 조계현 대표의 임기만료에 따라 한상우 현 카카오게임즈 CSO(최고전략책임자)를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했다.한상우 내정자는 네오위즈 중국 법인 대표 및 글로벌 사업 총괄 부사장, 아이나게임즈 COO(최고운영책임자), 텐센트코리아 대표를 거쳐 2018년 카카오게임즈에 합류했다.게임시장과 글로벌 사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로 카카오게임즈 국내외 투자 및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 등을 추진해 왔다.글로벌 사업뿐 아니라 마케팅, 데이터분석,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도 보유하고 있다.한상우 내정자는 쇄신TF장을 맡아 앞으로의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