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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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神] 미래에셋 박현주⑦ 끝나지 않은 신화 이미지기사 "바르게 벌어 바르게 쓸 때 돈은 꽃처럼 아름답다."박현주는 '따듯한 자본주의'의 실천을 강조해 왔다.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1998년 '미래에셋희망재단'을 설립하고 2000년 75억 원의 사재를 출연해 만든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통해 20여 년간 꾸준히 사회공헌을 했다.2008년 직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 『2010년부터 배당금 전액을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13년간 실천했다. 누적 기부액은 300억 원에 달하며 기부금은 미래에셋박현주재단과 미래에셋희망재단을 통해 인재 육성과 사회복지사업에 사용됐다." 미래에셋 박현주재단 동행 24년⑤ 이미지기사 40만 개의 미래2023년 미래에셋그룹 재단과 계열사에서 운영하는 인재육성 프로그램 참가자가 40만을 돌파했다. 아이에게도 서재가 필요하다2021년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져 '희망듬뿍 도서지원'을 '내 방안 나만의 도서관'으로 발전시켰다. 긍정적인 책읽기 습관 형성 지원을 위해 개인별 맞춤식 도서 지원의 장점을 살리면서 즐거운 책읽기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원목 책꽂이와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미니 간판, 아동들의 희망도서, 책놀이키트를 하나의 꾸러미로 구성해 자기만의 독서공간을 갖도록 지원했다. 나눔을 나누는 [금융의神] 미래에셋 박현주⑥경영도 선수가 뛰어야 한다 이미지기사 박현주는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2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을 "2020년 올림픽 '국대'를 2000년 금메달리스트 자녀 중에서 나이 순으로 선발하는 것"으로 간주한 버핏의 말에 동감했다.지난해 박현주는 국가 인재 육성을 위해 미래에셋컨설팅 지분 25%를 미래에셋희망재단에 넣기로 약속했다. 자서전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한국 최고의 (돈)부자'가 되기보다 '최고의 기부자'가 되겠다고 한 약속을 실천한 것이다.기부는 현재 공익법인의 주식 보유와 관련된 규제 등이 완화되는 시점에 진행될 것이며 주식 기부 약속은 2세경영이 아닌 [금융의神] 미래에셋 박현주⑤ 인도의 미래, 미래에셋 인도법인 이미지기사 2002년 하버드대에서 밟은 AMP(최고경영자과정)는 박현주를 해외시장에 눈뜨게 했다."후배들에게도 경영 노하우를 배울 시간을 주고 싶다"며 2기 전문경영진 8명에게 하버드와 스탠포드 AMP를 밟도록 했다.미래에셋자산운용은 해외 유망 ETF운용사를 인수합병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2011년 캐나다 ETF운용사 '호라이즌스'(Horizons ETFs)를 시작으로 2018년 미국 '글로벌엑스'(Global X), 2022년 호주 'ETF시큐리티스'를 인수하는 등 열세 번의 인수합병을 추진했다.글로벌엑스'는 세계 최대 ETF시장인 미국에 미래에셋 박현주재단 동행 24년④ 이미지기사 눈높이 독서2013년 전문가들이 아이들의 가정환경, 관심사, 장래희망, 독서 수준 등을 고려해 추천 도서를 지원했다. 《계속》 미래에셋 박현주재단 동행 24년③ 이미지기사 2017년 나눔문화 임직원 참여 활동 가족과 함께 혼저옵서예~2009년 아이들에게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선물하는 제주도 가족여행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조손가정을 대상으로 시작해 취약계층 전반으로 확대했다. 글로벌 청춘, 그대를 응원합니다 ! 미래에셋 해외교환장학생은 2007년 1기 선발을 시작으로 2023년 12월 30기를 선발했다. 미래에셋을 대표하는 사회공헌활동이자 재단 주력사업이 됐다. 미래에서 온 아이들2009년 보호가 필요한 아동의 교육복지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서울특별시장 표창에 이어 2018년 지역아동센터 지 미래에셋 박현주재단 동행 24년② 이미지기사 미래를 읽는 아이들독서 환경 조성을 위한 사업은 2003년 공부방 희망도서 지원사업으로 시작해 재단의 아동, 청소년 대상 사업 중 가장 오랫동안 추진하고 있다. 공부방 희망도서 지원(2003-2007), 북카페 조성(2008-2012), 희망듬뿍 도서 지원(2013-2019), 나만의 책꿈터 도서 지원(2021-)으로 발전했다. 코즈모폴리턴을 키우는 미래2007년 시작한 글로벌 문화체험단은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탐방캠프로 사회복지시설과 아동들의 만족도와 수요가 가장 높은 대표 프로그램이다. 《계속》 [금융의神] 미래에셋 박현주③ 위기를 기회 삼아 이름 석자를 걸다 이미지기사 동원증권 입사 10년 만에 최연소 이사가 되고 여의도에서 명성이 자자했을 때 박현주는 사표를 던졌다. 모두가 만류했지만 서른아홉 '김재철키즈'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김재철은 못내 아쉬웠다.박현주는 한국 자본시장에서 의미 있는 일을 저지르고 싶었다. '어떤 회사를 만들 것인가, 어떤 회사가 우리 자본시장의 발전에 필요한가.'회사의 방향부터 정했다. '열린 마음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인재를 중시하자'. '미래에셋'은 박현주의 경영철학을 담은 사명이며 그 이름은 이후 거침없이 세계와 미래로 나아가게 한 나침반이 됐다.박현주는 기회를 노렸 [금융의神] 미래에셋 박현주④ 실패는 재도전의 발판 이미지기사 미래에셋증권의 모태는 1999년 자본금 500억 원으로 설립한 국내 첫 인터넷증권사 'E미래에셋증권'이다. 사이버증권사 이미지가 강해 '미래에셋증권'으로 개명하고 뮤추얼펀드를 판매했다.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박현주1호'의 성공에 힘입어 1999년 말 출시해 3,000억 원이나 끌어모은 '박현주2호'는 벤처거품이 꺼지고 증시가 내리막을 타며 40% 가까이 손실이 났다.'한국의 워런 버핏'으로 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지만 실패는 또 다른 도전의 발판이 됐다. 박현주는 폐쇄형펀드의 한계를 절감하고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개방형펀드시장 미래에셋 박현주재단 동행 24년① 이미지기사 아름다운 출발2000년 3월 28일 사회복지법인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이 설립됐다.'미래에셋 국내 장학생 선발'은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추진한 국내 대학생 장학지원 프로그램이다. 2007년 실시한 해외교환장학프로그램과 함께 재단의 대표 사업이다 《계속》 [금융의神] 미래에셋 박현주②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 돌리는 법 이미지기사 박현주는 대학 2학년 때부터 명동 증권가를 돌며 투자에 눈을 떴다. 1970년대 말 영문잡지를 술술 읽는 남루한 노파가 매일 증권사 객장에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명동사채시장의 큰손 백희엽이었다.박현주는 백희엽의 사무실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다. 증권사와 기업 방문 때도 따라갔다. '정석투자가 제 몫을 해낸다'는 것을 배우고 대학원 때 사설 투자자문 '내외증권연구소'를 설립했다. 주식은 도박으로 여겨졌고 관련법도 없던 시절이었다.동양에서 증권인생을 시작한 박현주는 1988년 한신(→동원)으로 건너갔다. 서른둘에 중앙지점장을 맡으 [금융의神] 미래에셋 박현주① 재밌는 건 취미로, 잘하는 걸 업으로 이미지기사 일제강점기 민족은행은 말살됐고 해방 후 우리 금융은 껍데기만 남았다. 그마저도 전쟁으로 파산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 후 77년. 대한민국 금융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기적을 이루었다. 은행들은 연간 수조 원대 순익을 거두고, 여의도 증권가는 '아시아의 월스트리트' 반열에 올랐으며, 리딩 보험사 한 곳의 자산 규모가 대한민국 한 해 예산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뽕밭이 거저 바다가 된 건 아니다. 원조경제시대 굴욕을 감내했고 개발시대엔 "한국 은행은 정부의 현금인출기"란 조롱까지 받아야 했으며 외환위기 땐 퇴출과 구조조정으로 생존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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