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술은 '전위정신'으로 무장한 추상이 승리했다. 한국도 흐름을 놓치지 않고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찾아가며 국제미술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된 시대를 맞아 전시된 김환기, 유영국, 한묵, 남관, 이응노의 작품은 한국미술을 이끌어나가는 추상의 무게와 역할을 관람객에게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조각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위해 재료를 깎아낸 흔적이 남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김종영-

한국 추상조각을 대표하는 김종영은 1953년 런던 테이트갤러리에서 열린 조각전 <무명정치수를 위한 기념비>에서 입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조각하지 않는 아름다움(不刻)"을 선언하고 재료를 깎아낸 흔적이 남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감춰 사물의 본성이 드러나도록 하는 작가의 태도가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작품을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했던 작가는 만년 작품 몇 점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품 안에 들어오는 크기로 만들었는데 여체를 나타내는 유연한 곡선이나 원래 그런 모양의 나무나 돌이었던 것처럼 다듬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으면 영혼으로 회귀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영원성을 조각에 담고 싶다" -권진규-

초기 추상조각가 권진규는 다양한 형태의 마(馬)상과 여인 흉상, 자화상을 제작했다. 천재성을 알아봐주지 못하는 시대를 원망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드로잉 작품들도 남겼는데 <달을 보는 기사>는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출품했다. RM의 소장품은 70~80%가 한국 근현대작가들의 작품으로 젊은 관객들에게 세대간 예술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88올림픽은 우리가 만들어낸 최고의 예술이었다.

미술관은 700제곱미터에 달하는 조각공원에서 작품과 자연을 동시에 품고 있다. 6개 전시공간으로 이루어진 1관과 지하철 9호선 한성백제역과 연결된 2관은 다양한 관람 동선을 만들어낸다. 지하철과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을 연결하는 지하공간과 하늘이 보이는 전시공간은 자연을 담은 문화공간을 선사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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