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훌리건은 중세 유럽에서 신분 상승을 꿈꿀 수 없는 계급구조의 병폐를 보여준다. 1314년 영국 왕 에드워드 2세는 군사훈련에 유용한 양궁과 복싱 대신 축구를 하는 청년들이 늘고 관중의 집단폭력이 빈번해지자 '축구금지령'을 선포했다.
영국 사회연구센터는 훌리건의 기원을 중세로 봤다. 중세 유럽에서 축구는 마을 분쟁 해결 수단이었다. 남자는 전부 출전해야 했다. 수백 명이 경기에 나서다 보니 유니폼을 입은 군인과 다를 게 없었다. 19세기 들어 심판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몽둥이를 들기 시작한 건 1920년대다. 1930년대 경기장 인근 가게를 약탈하기 시작했고 선수와 경찰을 공격하기도 했다. TV중계가 시작된 1960년대 축구팬이 폭발적으로 늘고 전쟁으로 사회복지가 축소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실업자와 빈민층들이 축구를 매개로 들고 일어섰다. 1970년대 '훌리건(Hooligan)'의 등장이다.
1980년 절정을 맞은 훌리건은 조직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Gooners'(머저리), 'Suicide Squad'(자살특공대), 'Head Hunter'(참수사냥꾼) 등 악명 높은 훌리건이 생겨났다. 1800년대 런던 울리치 왕립 조병창 노동자들이 창단한 '아스날'의 뜻은 무기고다. 엠블럼도 대포다. 군수노동자들이 팬이었다. 거친 응원전에 사람들은 그들을 gunner(총잡이)와 비슷한 발음의 gooner(머저리)로 불렀다.
웨스트햄과 밀월의 훌리건도 악명 높다. 두 팀 모두 제철소 직원들이 창단했다. 1차대전 이후 어려워진 웨스트햄제철소는 파업에 돌입했지만 밀월제철소가 동참하지 않자 원수가 됐고 만나기만 하면 주먹이 오갔다.

웨스트햄 훌리건을 모티브로 한 <훌리건스> 촬영 당시 패싸움 장면에 배우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은 두 팀의 훌리건들이 출연을 자처했는데 진짜 싸움으로 번져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밀월이 3부리그로 강등되면서 악연이 끊어지나 했지만 2009년 칼링컵 대진추첨에서 다시 만났다. 참사 예방을 위해 웨스트햄 홈구장은 밀월팬의 원정티켓을 반으로 줄이고 경비원을 다섯 배로 늘렸지만 난투극을 막지 못했다. 칼을 맞은 훌리건이 사경을 헤매고 70명 이상이 체포됐다. 그 후 두 팀의 매치는 차단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