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영 위원장은 희생과 헌신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보여주기식 쇼나 말뿐인 가식적인 희생과 헌신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진정성 있는 봉사로 주민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권 위원장에게 정치란 첫 믿음, 끝까지—다. 

권순영에겐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하늘이 준 선물 같은 딸아이가 있다. 지역일로 바쁜 중에도 엄마노릇을 한다고는 하지만 다른 엄마들에 비하면 빵점짜리라고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일 쪽으로 기울어졌다. 국회에서 밤을 새우며 일할 때가 많았는데 권순영의 남편도 헌병대장으로 전방에서 근무하고 있어 아이를 익산 시댁에서 유치원을 다니게 했다. 가끔씩 아이 혼자 기차를 태워보내면 용산역에서 데려와 하루 정도 함께 지내고 기차를 태워 내려보내곤 했다. 하루는 돌아가는 기차에 태우고 창밖에서 배웅하는데 아이가 소리도 내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쌓였던 설움이 북받친 것이다. 

 

"아빠랑 나는 고양시민 아니야?"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권순영은 고양시의원에 당선돼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지역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민원을 해결하다보니 딸아이 숙제도 봐주지 못하고 준비물도 챙겨주지 못할 때가 많았다.

딸아이에게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다른 엄마들처럼 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널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힘들고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게 엄마가 하는 일이라서 그래." 하며 '조기주입'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엄마, 고양시의원은 고양시민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며? 그런데 아빠랑 나는 고양시민 아냐?" 허를 찔린 권순영은 말문이 막혔다.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어쩜 그렇게 잔망스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감탄하면서도 그 정도로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으응, 고양시민 맞지. 누가 아니래? 하지만 엄마가 도와드려야 할 더 많은 시민이 있잖아? 그러니까 아빠처럼 엄마를 좀 이해해 줄 수 없을까?" 그렇게 얼버무리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지만 딸아이의 '촌철살인' 일침에 권순영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딸이 더 정치인 같았다.

고양에서 받은 민원 중 가장 해결하기 힘든 민원을 한 집에 사는 '초등학생 시민'에게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권순영은 하나밖에 없는 어린 딸아이 민원 하나 들어주지 못하는 엄마가 무슨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회의가 들었다. 어느 정치가, 철학자에게도 듣지 못한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초등학교 1학년짜리 딸아이한테서 듣고 권순영은 엄마로서, 정치인으로서 답변해야 했다. 바른 길은 용감해야 한다 아이에게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과 의정활동을 게을리 할 수 없는 물리적 현실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둘 다 잘하려는 것은 둘 다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선택의 순간마다 '둘 다 잘할 수 없을까?' 하는 자책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권순영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놀랍게도 그 잔망스런 '초등학생 민원인'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딸아이가 하루는 미술시간에 만들었다며 카드를 한 장 건네주었다. 무심코 건네받은 그림카드에 적힌 한 줄의 글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른 길은 용감해야 한다』 딸아이가 앙증맞은 그림과 함께 삐뚤빼뚤 꾹꾹 눌러 쓴 글씨였지만 '광화문글판'에서 본 어떤 문장보다 크고 명료했다. 권순영의 가슴속에서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는 '메시지'를 보고  딸아이가 '메시아'처럼 느껴졌다.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해야 하는 게 맞지만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용감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순간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니다" 하는 대다수에 묻혀 따라가고 있는가." 아이는 고사리손으로 메세지를 또박또박 적고 있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부러지더라도 원칙을 지키겠다는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다"는 비판에도 위축되지 않겠다는 초심을 일깨우고 있었다. 

 

좋은 엄마는 정치 잘하는 엄마

권순영은 '좋은 엄마'가 어떤 엄마일까 생각해 봤다. 정치인 엄마는 정치를 잘해야 딸에게 좋은 엄마다. 딸이 엄마의 자랑이듯 엄마도 딸의 자랑이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엄마가 딸에게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들 하지만 권순영은 딸이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말할 만큼 자랑스런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는 딸을 키우고 그렇게 커가는 딸이 또 엄마를 키운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 부모가 그런 사람이 돼야 한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 아빠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된다. 아이가 정직하길 바라면 부모가 정직한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정직한 모습을 보여주되 정직하게 해도 성공한다는 것까지 보여줘야 아이가 확신을 갖게 된다. 정직하게 살았는데 만날 손해만 보면 아이는 정직한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정치란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고, 공정하게 살아도 이길 수 있다는 걸 입증하는 일이 아닐까.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으면 그대로 행동해야 한다. 용기 있는 사람이 행동한다. '행동하는 용기'를 보여주면 딸아이도 엄마처럼 되고 싶을 것이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스스로 찾을 것이다.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1972년 6월 미국 대통령 R. M. 닉슨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워싱턴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야당 당사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체포됐다. 

여자가 사회학을 전공하면 시집도 못 가던 사회

닉슨은 1974년 대통령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워터게이트사건으로 유명해진 <워싱턴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은 세계 언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많은 기자지망생의 롤모델이 됐다. 그들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1980년대 초반 여고생이던 권순영 역시 사회부기자를 꿈꾸게 했다. 당시 기자는 대부분 의협심 강한 남자들이나 꿈꾸는 직업이지, 여자들이 선망하거나 지망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직업이 아니었다. 여자 아나운서나 리포터와 달리 '여기자'는 아직 낯선 시대였다. 사회학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도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의 반대에 부닥쳤다. "여자가 사회학을 전공하면 취업도 못하고 시집도 못 간다"는 얘기까지 들어야 했다. 입학원서를 쓰기 전 날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해 쓰러졌다. 권순영이 진로문제로 고집을 부려 그렇게 된 건 아닐까 자책감이 들었다. 권순영은 '사회학과' 대신 엄마가 원하던 '사회복지학과'에 원서를 냈다. 

사회복지사의 소명

한 달 간 엄마 곁을 지켰키며 아픈 사람들과 간병인들을 지켜봐서였는지 사회복지사도 사회부기자 못지않게 사회에 필요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할 무렵 권순영은 언제라도 현장으로 나갈 준비가 돼 있었다. 교수님이 일해 보는 게 어떠냐고 추천했다. 학부 때 세상을 경악케 했던 '형제복지원사건'을 사회부기자라도 된 듯 열심히 취재해 쓴 리포트를 인상 깊게 본 교수님의 추천으로 장애영아들을 보호하는 시설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버림받는 아기들을 안아들고 슬픔과 분노가 섞인 눈물을 흘렸다. 장애영아들을 돌보면서 그 부모들에 대한 분노는 안타까움으로 조금씩 바뀌어갔다. '어떻게 몸도 성치 않은 아기를 버릴 수 있나?' 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오죽하면 몸도 성치 않은 아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이성적 문제의식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장애영아 양육 포기'를 비롯한 장애인복지 문제가 개인적·가정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국가적 문제로 접근해야 함을 체득하게 된 것이다. 언제까지나 그 부모들만 비난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복지가 잘 돼 있고 부모가 장애아를 잘 키울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면 그렇게 쉽게 자기 자식을 버리거나 시설에 떠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장롱면허'가 아니다

정치를 시작하고 시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할 때도 장애인복지 문제는 생애 첫 직장인 장애영아보호시설 시절 미처 치유하지 못한 '아픈 손가락'이었다. 권순영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들여다볼 때 미안해진다.'현장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사람으로서 현장의 경험을 얼마나 되돌아보고 그 반성의 지혜를 현장에서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복지를 실현하는 과정인 정치를 하고 있는가?' 사회복지, 특히 장애인복지는 이론이 아니라 경험이다. 현장 경험이 많을수록 장애인에 필요한 복지를 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스펙 쌓기'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면허증이 장롱 속에 묵혀 있는 동안 장애인들도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들다. 장애인의 승하차를 돕기 위해 저상버스를 도입하면서 비장애인들도 버스에 오르내리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에서는 비장애인도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버스 바닥의 높이가 아니라 버스정류장의 경계석 높이에 '휠체어길'이 막힌다.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가 정작 장애인에게는 무용지물인데, 비장애인들만 혜택을 보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달린 거울도 그런 예다. 원래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전진해 타고 내릴 때 그대로 후진할 때 백미러 역할을 하도록 부착한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거울은 비장애인에게도 유용하다. 그런데 어떤 엘리베이터에는 거울이 아예 없거나 정면이 아니라 측면에 부착된 경우도 많다. 장애인은 휠체어로 후진을 하기도 힘든데 비장애인은 측면 거울을 보며 용모를 단장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에 거울이 있는 이유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비장애인도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장애인복지를 고민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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