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왕자 방원은 세자로 책봉된 이복(異腹)동생을 제거하고 맏형을 왕위에 올렸다가 동복(同腹)형들까지 제거하고 왕좌에 앉았다.
600년 후, 현대판 '왕자의 난'이 현대에서 일어났다. 2000년 난을 일으킨 왕자는 현재 재계 1위를 달리는 현대차그룹의 명예회장 정몽구였다. 왕회장 정주영은 장남인 몽구가 아니라 4남 몽헌을 후계자로 낙점했다.
정몽구는 자동차 정도만 가져가게 돼 있었고, 건설, 전자, 증권 등 대부분이 정몽헌의 차지가 될 운명이었다. 자동차그룹의 성공을 위해 캐피탈 이상의 금융계열사가 절실했던 정몽구는 정몽헌이 해외출장을 간 사이 기습적으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쫓아냈다.
정몽헌의 반격으로 왕자의 난은 실패하지만 자동차그룹으로 독립한 후에도 금융계열사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던 정몽구는 2001년 대우그룹 해체로 다이너스카드가 매물로 나오자 덥석 물었다. 이렇게 탄생한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은 2%도 안 됐고 누적 영업적자는 캐피탈까지 합쳐 8,000억 원이 넘었다.
다급해진 정몽구는 2003년 기아차 부사장으로 톡톡 튀는 둘째사위 정태영을 투입했다. 정몽구는 딸 셋에 늦둥이 아들을 뒀는데 첫째사위는 의사였고, 셋째사위는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했다.(현대하이스코 사장까지 초고속 승진했지만 결국 이혼했다.) 외아들 정의선은 30대 초반으로 경험이 부족했다.
종로학원 오너 장남으로 서울대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정태영은 정몽구의 둘째딸 명이 씨와 결혼한 후 2001년 기아차에 입사했다. 정몽구의 구원투수 낙점으로 정태영의 야망이 기회를 잡았다.
40대 초반 CEO는 디자인경영으로 'M카드' 돌풍을 일으켰다. 출시 1년 만에 신규 회원 100만을 돌파하고, 카드대란 때도 현대카드는 2004년 1,898억 원 적자에서 2005년 288억 원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 슈퍼매치, 슈퍼콘서트 등 컬처경영까지 성공시킨 정태영은 현대카드·캐피탈 사장으로 승진했다. 아들 정의선보다 사위의 사장 승진이 빨랐지만 사위는 사위일 뿐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