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김상윤 기자
  • CEO
  • 입력 2025.05.20 17:46
  • 수정 2025.05.20 17:49

우리금융 임종룡의 대망[1] 리딩에서 꼴등으로···LG카드의 악몽

'카드대란' 예측 못해···예보 눈치 인수 실패
'신한'은 배불리 먹었고, '우리'는 배가 아팠다

 

 

우리금융은 1899년 고종이 만든 대한천일은행이 뿌리다. 일제강점기 '조선상업은행'이 된 천일은행은 민족은행들을 흡수하는 앞잡이 노릇을 하다 해방 후 정부에 귀속돼 한국상업은행이 됐다. 1999년 외환위기 때 '부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에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합병으로 한빛은행이 탄생했다. '한일'도 1932년 설립된 '관영' 조선신탁㈜이 모태다. 1958년 정부가 삼성물산에 불하했지만 1961년 5·16으로 국가에 귀속됐다. '한빛'은 2001년 '평화'까지 흡수하며 '우리'가 됐지만 인수합병 과정에서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가 돼 '국책'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대한민국 은행은 오랜 세월 관치를 벗어나지 못했고, 우리은행은 훨씬 더 그랬다. 예보 눈치를 보느라 비은행부문 경쟁력이 약해지면서 사실상 4대금융에서도 밀려났다. "완전 민영화"를 선언했지만 '관 출신' 임종룡 회장이 그룹 회복과 꼴찌 탈출에 성공할지 미지수다. 지난 125년 우리금융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1] 리딩에서 꼴등으로···LG카드의 악몽

[2] 증권 부메랑···그때의 임종룡과 지금의 임종룡

[3] 관치DNA 극복할까···국책(상업)+국책(한일)

[4] 民영화 아닌 私영화···공적자금 털다 부실 위험

[5] 경영진의 모럴해저드···내부통제 기능 상실

[6] M&A 먹잇감 부족···풀 뜯어먹는 사자?

[7] 임종룡 리더십을 가로막을 변수들

1998년 정부는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신용카드 규제를 풀었다. 구멍가게도 카드를 받았고 무직자와 학생에게까지 카드를 발급해 줬다. 카드사들은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돌려막기'를 장려하기까지 했다. 2002년 줄파산이 시작됐다. 신용불량자가 폭증하자 뒤늦게 정부는 현금서비스를 막았다. 카드사들은 연체와 정부 압박까지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2003년 초 '천만인의 카드'에 부도 위기가 닥쳤다.

"어차피 망할 회사에 대금을 갚아야 하나?" 

LG카드 고객들은 결제를 회피했다. 돈이 돌지 않으니 정직한 고객도 카드를 못 쓰게 됐다. 정부는 채권은행들을 불러모았다.

"LG카드 인수는 속전속결로!" 

금융당국이 유력한 인수후보로 점찍은 주채권은행인 '우리'는 손실부담이 커지면서 발을 빼려 했다.

"잠재 부실을 털어내려면 5조2,000억 원은 확충해야 한다." 

정부는 침묵했고, 다른 채권은행들은 과묵했다. '우리'는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국민', 농협과 함께 LG카드를 공동 관리하는 방안을 제출했다.

"은행들이 이익만 앞세워 지원 방안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 LG카드 정상화가 무산되면 모든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동걸 금감위 부위원장이 은행들에 칼을 뽑고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분석과 준비가 부족하다"며 우리은행을 질책했다. 우리은행은 '주채권은행' 꼬리표가 억울했다.

2003년 LG카드 정상화 지원 협상을 주도해 온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 이종휘 부행장(오른쪽)과 이순우 기업금융단장이 LG카드를 8개 채권은행에 한해 매각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LG카드 정상화 지원 협상을 주도해 온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 이종휘 부행장(오른쪽)과 이순우 기업금융단장이 LG카드를 8개 채권은행에 한해 매각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1월 채권단은 부채 3조6,500억 원을 출자전환 했다.

"반드시 살리겠다." 

유지창 산업은행 총재는 LG카드 정상화의 선봉장을 자처했다. 2005년 채권단의 지원과 증자로 자금난에서 벗어났다. 카드업계 유동성위기도 진정됐다. '폭탄' LG카드가 정상화되자 비은행부문이 약했던 은행들의 태도가 채권단을 꾸리던 때와 180도 달라졌다.

2005년 말 1조 원대 순익을 내자 LG카드는 리딩금융그룹으로 가는 '천국의 계단'이 됐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LG카드 인수가 간절했다. 마침 '신한'은 '조흥' 인수에 실탄을 소진했고 '국민'은 카드 합병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 그나마 여력 있던 '농협'은 이미 500만 카드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M&A로 비은행부문을 확대하겠다." 

2006년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이 LG카드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몸값은 날로 높아져 갔다. 우리금융 대주주 예금보험공사(예보)도 발목을 잡았다. 무리한 인수로 '우리'에 투입한 공적자금을 회수하지 못할까 우려했다. 그 사이 실탄을 확보한 '신한'과 '외환' 인수에 실패하고 돌아온 '하나'가 숟가락을 얹었다. 결국 '신한'이 6조6,800억 원에 채가는 신의 한 '술'을 떴다. '신한'은 배불리 먹었고, '우리'는 배가 아팠다.

'신한' 이름표를 달고 3년 만에 3조2,850억을 벌어들이면서 LG카드는 미운 오리새끼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황 회장은 "LG카드 인수로 신용부문을 확대할 수 있었지만 예보가 말렸다"고 토로했다. 2005년 어렵게 흡수한 LG증권마저 2014년 농협에 넘겨줘야 했다. 우리는 2013년에서야 카드사를, 2024년에서야 증권사를 출범했다. 비은행부문의 내실을 다진 은행들이 '리딩금융그룹' 왕좌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 '우리'가 쫓아가기 바쁘게 된 지금의 신세는 20년 전 LG카드사태의 패착이 크다.《계속》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