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민족은행은 말살됐고 해방 후 우리 금융은 껍데기만 남았다. 그마저도 전쟁으로 파산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 후 77년. 대한민국 금융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기적을 이루었다. 은행들은 연간 수조 원대 순익을 거두고, 여의도 증권가는 '아시아의 월스트리트' 반열에 올랐으며, 리딩 보험사 한 곳의 자산 규모가 대한민국 한 해 예산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뽕밭이 거저 바다가 된 건 아니다. 원조경제시대 굴욕을 감내했고 개발시대엔 "한국 은행은 정부의 현금인출기"란 조롱까지 받아야 했으며 외환위기 땐 퇴출과 구조조정으로 생존마저 위협받았다. 그렇게 살아남은 대한민국 금융은 더 커지고 강해졌다.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불모지를 개척하고, 혁신을 거듭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전설의 금융인들! 우리 금융은 아직 얕고 작은 바다다. '고객가치'와 '글로벌'과 '지속가능'의 더 크고 깊은 바다로 나아가려면 그들을 기억하고 배워야 한다. 〈글로벌e〉가 77년 대한민국 금융사(史)에 빛나는 77명의 금융영웅을 탐구하는 이유다.
"한국의 주택은 너무 비능률적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서울 인구는 계속 늘 텐데 지금처럼 계획 없이 집을 지으면 나중엔 집 지을 땅이 모자랄 겁니다."
주택건설 전문가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청년이 송인상을 찾아왔다. 송인상은 설계를 보여달라 했고, 얼마 후 청년이 가져온 도면은 20평짜리 방 두 칸에 화장실과 부엌이 있는 집이었다. 자재를 가벼운 것으로 써 여러 층으로 높여도 되는 이 ICA(협동조합)주택은 우리나라 조합주택의 효시가 됐고 이후 AID(단지형)아파트로 발전했다.
EDI 연수로 인도에 갔을 때 농촌에서 수백 명의 아낙이 줄지어 자갈을 전달하며 나르는 광경을 본 송인상이 안내자에게 "저 사람들 무얼 하고 있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 놀랍게도 마을주민들은 직접 다리를 놓고 있었다.
"정부에서 시멘트와 철근을 주면 주민들이 강가에서 자갈과 모래를 가져다 다리도 놓고 마을회관도 짓습니다. 바닷가에서 굵은 자갈을 가져다 댐을 건설하기도 합니다. 골재를 거저 갖다 쓰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하니 큰돈이 들지 않아 아주 효율적입니다."
인도에서 본 '공동체개발프로그램'에 감명받은 송인상은 '지역사회개발계획'을 세우고 전국 스물두 곳에서 사업을 벌였다. 농촌마을에 다리를 놓고 당시 '공회당'이라 불리던 마을회관도 지었다. 정부가 자재를 지원해주고 마을주민들이 스스로 짓게 했다.
어촌에서는 어선이 한꺼번에 정박할 수 있는 부두를 건설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을 선발해 시골 아이들에게 공부방도 열어주고 피아노도 가르쳤다. 송인상의 '지역사회개발계획'은 농어촌 주민들에게 '제 힘으로 다시 일어선다'는 강한 의지를 불어넣으며 5·16 이후 박정희정부에서 새마을운동으로 진화했다.
송인상이 부흥부를 맡기 전부터 "국민은 굶주리는데 정부는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비판 기사가 종종 나왔다. 이승만은 그때마다 진노했다. 송인상은 국민도 '경제성장'이나 '경제개발' 개념을 이해하도록 계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기자들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생소해 국민에게 쉽게 전달할 방법이 필요했다.
송인상은 라디오방송에 나가 정책을 설명해주기로 했다. 부흥부장관이 직접 해설해주니 국민들 신뢰도 얻을 수 있었다. 정책이 국회에서 도마 위에 올라 제동이 걸리곤 했는데, 국민들이 정책을 잘 이해하면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것이고 국회도 사사건건 간섭하며 정부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송인상이 KBS라디오방송국에서 PD를 만나 준비해간 원고를 줄줄 읽자 PD가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어려운 얘기를 청취자들이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쉬운 말로 해주시든지,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어주셔야 경제지식이 없는 국민들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처음 하는 방송인데다 PD한테 지적까지 받으니 송인상은 더 긴장됐다. 아무래도 연설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었다. PD는 방송국에 새로 들어온 강영숙과 임택근 아나운서를 송인상에게 데려왔다. "이 두 아나운서가 장관님께 묻고 장관님께서 알아듣기 쉽게 답하는 식으로 진행하면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겁니다." '송인상과 함께하는 경제해설'은 매일 아침 7시부터 20분간 진행됐다.
'밀수를 방지하자'는 주제로 방송할 때다.
송인상: 밀수는 나라 경제를 좀먹고 망치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몰래 들여오는 것이므로 정부의 세수가 줄어 결국 국가재정이 파탄 납니다. 밀수품이 값도 싸고 품질도 좋은데 누가 제품을 개발하려고 하겠습니까? 밀수 때문에 국가 산업 경쟁력도 약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밀수는 반드시 근절돼야 합니다.
아나운서: 장관님, 그럼 가장 많이 밀수되는 게 무엇입니까?
송인상: 안경테입니다. 외국은 플라스틱테가 일반화돼 있는데 녹슬지도 않고 가벼워 인기가 많습니다. 플라스틱으로 안경테를 만들 수 있는 분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성을 검토해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겠습니다.
화장품 밀수가 극성을 부릴 때도 송인상은 방송에서 같은 얘기를 했는데 화장품회사 사장이 찾아와 자금을 융통해 달라고 하자 약속대로 달러를 구해 빌려주었다. 부흥부장관 때는 '외화와 생활', 재무장관 때는 '경제와 우리 생활'이라는 주제로 송인상은 3년간 라디오를 통해 전국민에게 '친절한 장관'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송인상은 "우리도 잘 살아 보자"며 국민에게 희망을 깨우려 노력했다. 장군 시절 송인상의 경제해설을 즐겨 듣던 박정희는 5・16 이후 송인상을 '경제교사'로 모시기도 했다.
원조경제 시기를 성공적으로 돌파하고 9대 재무부장관이 된 송인상은 인재를 영입하고 세무시스템을 투명하게 구축해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흑자재정을 실현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