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민족은행은 말살됐고 해방 후 우리 금융은 껍데기만 남았다. 그마저도 전쟁으로 파산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 후 77년. 대한민국 금융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기적을 이루었다. 은행들은 연간 수조 원대 순익을 거두고, 여의도 증권가는 '아시아의 월스트리트' 반열에 올랐으며, 리딩 보험사 한 곳의 자산 규모가 대한민국 한 해 예산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뽕밭이 거저 바다가 된 건 아니다. 원조경제시대 굴욕을 감내했고 개발시대엔 "한국 은행은 정부의 현금인출기"란 조롱까지 받아야 했으며 외환위기 땐 퇴출과 구조조정으로 생존마저 위협받았다. 그렇게 살아남은 대한민국 금융은 더 커지고 강해졌다.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불모지를 개척하고, 혁신을 거듭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전설의 금융인들! 우리 금융은 아직 얕고 작은 바다다. '고객가치'와 '글로벌'과 '지속가능'의 더 크고 깊은 바다로 나아가려면 그들을 기억하고 배워야 한다. 〈글로벌e〉가 77년 대한민국 금융사(史)에 빛나는 77명의 금융영웅을 탐구하는 이유다.
1950년 9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MacArthur)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은 수복됐지만 페허가 된 나라를 복구할 돈이 없었다. 인민군 지시로 조선서적이 지폐를 마구 찍어내는 바람에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져 한국은행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1951년 백두진 재무장관이 송인상을 불렀다. 송인상은 한국은행 부총재를 맡아 극비리에 화폐개혁을 추진해야 했다. 화폐개혁은 헌 돈을 새 돈으로 바꿔 주는 게 아니다. 돈을 바꿔 주며 일부는 저축으로 묶어두어야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 일본이 화폐개혁을 못한 것도 교환액의 일부를 저축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교환 때 일부 저축해야 인플레 잡는다
송인상은 1년 넘게 몰두한 화폐개혁 준비를 마치고 이승만에게 보고했다. "옛 돈을 100 대 1로 교환해 준다고 물가가 100분의 1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통화량을 10%라도 줄여야 합니다. 다 바꿔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일정 금액까지만 바꿔주고 나머지는 1, 2년 정기예금으로 묶어두어야 합니다. 통화량을 줄여야 물가가 안정되고 국민 생활에 여유가 생깁니다."
이승만은 생각이 달랐다. "자네는 이코노미스트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부자만 생각하지 말고 잠 못 자고 피땀 흘려가며 돈 번 중산층 생각도 해야지. 아무리 정부라도 국민에게 이 돈은 1년 동안 못 쓴다, 저 돈은 2년 동안 못 쓴다 할 수 있겠나. 자손들 데리고 좀 여유 있게 살아보자고 죽어라 일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권력이 있다고, 대통령이라고 100만 원만 쓰고 900만 원은 1년, 2년 동안 못 찾아 쓰게 하는 것은 반민주적이네."

송인상은 답답했다. 1~2년 동안 저축을 하라는 것이지, 사유재산을 몰수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정기예금으로 묶어둔 돈으로 이승만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방직공장도, 시멘트공장도 지을 수 있었다. 이승만은 각료를 모두 불러 "바꿔달라는 돈을 다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화폐개혁에 긍정적인 여론도 이승만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화폐개혁을 계획대로 못하면 나라 경제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었다. 이미 해군 함정에 새 돈을 산더미같이 실어 전국 각지로 보내고 있었다.
화폐개혁 실패, 戰後 경제 부흥 기회 놓쳐
송인상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사유재산을 국가가 동결할 수는 없다"던 이승만은 결국 송인상의 설득에 한 발 물러섰다. "자네들이 그렇게 완강하게 고집부리니 더는 반대할 수 없을 것 같네. 뜻대로 해보시게. 나는 백두진 장관도 믿고 김유택 총재도 믿지만 특히 송인상 자네가 그렇게 하면 물가가 안정된다고 하니 믿어 보겠네. 책임지고 해보게."
1953년 2월 14일 음력 설을 기해 일제히 돈을 바꿔주기로 했다. 돈을 바꿔주기 전에 일정 금액 이상을 정기예금으로 묶어두어야 한다는 법안만 국회를 통과하면 됐다. 하지만 여야는 첨예하게 대립했고 정치적인 논쟁이 계속됐다.
국회는 끝내 정기예금법을 통과시키지 않아 옛 돈을 새 돈으로 전부 바꿔주어야 했다. 이승만의 뜻대로 된 것이다.
돈을 먼저 바꿔주고 정기예금을 하라는 것은 아무 소용 없었다. 화폐개혁이 실패하면서 전후 피폐해진 우리 경제를 일으켜 세울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