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童心)이었다. 그리고 부성애(父性愛)…….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대화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골길을 따라 할머니집으로 가는 어린아이. 작은 아이의 눈망울에 비쳐진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던 빛줄기, 눈부신 햇살…….

그 생명의 빛은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웠을까? 장관, 교수, 비평가, 희곡작가, 소설가, 시인……. 화려한 그 많은 직함을 뒤로하고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는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에게서 소탈한 인간미와 인격의 깊이가 느껴졌다.

이야기는 시냇물처럼 음악처럼 끝없이 이어지고 무궁무진한 언어의 보고(寶庫)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폭발하면서 마치 불꽃놀이를 하는 것만 같았다. _《만나고 싶은 사람, 이어령 편》 중에서

선생님의 추천으로 등단하고 인터뷰책을 준비하며 다시 뵈었다. 책이 나오자 선생님이 제일 먼저 만날 약속을 잡아주셨다. 책에 정성껏 사인을 하고 귤을 사서 평창동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를 찾아갔다.

표지부터 아주 세심하게  살펴보신 선생님의 얼굴에 잔잔하게 희색이 돌았다. "잘 만들었어요.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요." 그 사진으로 함께했던 시간들을 추억하고 선생님을 추모하며 기도 드릴 수 있게 됐다.

프랑스에서 돌아와 선생님을 다시 찾아 뵈었다.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와 넥타이, 커프스를 하신 소매까지 선생님은 멋진 영국신사였다. 파리에서 보낸 편시 속 '바다의별' 시가 좋다고 하셨다. 책상 위로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 종이에 글을 쓰시는 선생님의 손을 비추었다. 펜을 쥔 손가락이 빛 속에서 환하게 움직였다.

《한국인 이야기》를 집필하실 때, 매일 평창동 언덕을 올라 선생님을 도와드렸다. 아침회의 때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좋았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는 기쁨의 노래가 절로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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