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서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정경은 시골 논길을 걷다 풀밭에 앉아 토끼풀 꽃으로 꽃시계, 꽃반지를 만들어 내 손에 끼워 주셨던 청초하시고 더없이 아름다우신 어머니의 모습이다.

친정집에 가실 때 어린 내 손을 꼭 붙잡고 한밭(지금의 대전) 논길을 걸으셨던 어머니. 나의 왼 손목엔 꽃시계가 손가락엔 꽃반지가 향기로웠다. 어느덧 해는 저물어 논에서는 개구리가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그리운 박(朴), 선(仙)자 봉(逢)자 어머님. 장난감과 인형이 귀하던 시절 어머니께서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 인형을 만들어 주셨다. 나는 종이인형놀이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놀았다.

중학생이던 어느 봄날 일요일, 여유롭게 늦잠을 자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유리창 아래서 꿈결에 듣는 듯한 노랫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 봄날은 간다

거실에서 다림질을 하시면서 노래 부르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지금 어찌 이리도 아련한지……. 이제는 내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 노래를 부르는데 딸들은 내 노래를 들으며 할머니의 목소리를 기억할 수 있을까?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 열 달간 고이 품어 피흘려 낳으시고 / 눈물로 키우셨네 /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보고 싶은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 때문일까? 나는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사진 속에서 어머니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고 계신 고(高), 동(東)자 권(權)자 아버님. 내가 아기였을 때 한밤중에 신열이 나 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워져 의식을 잃자 아버지는 나를 안고 의사를 찾아 달려가셨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잠자고 있는 의사가 깨어나지 않자 자식을 살리려는 일념으로 문을 부쉈고, 그때서야 의사가 나타나 치료해 살아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들려주시곤 했다.

사업을 하신 아버지는 밤 늦게 귀가하시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 초인종소리에 달려가 문을 열어 드리니 아버지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내 어깨에 기대게 해 드리고 들어왔는데, 아버지께서는 들고 오신 과자 봉투를 내 손에 꼭 쥐어 주셨다.

평양이 고향이신 실향민으로 북에 계신 가족을 늘 그리워하셨던 아버지. 자수성가하시면서 얼마나 고생이 심하셨을까? 그 외로움은 또 얼마나 깊으셨을까?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고 아버지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딸 집에 머무셨던 2016년 설날, 가족들이 모여 세배를 드리고 명절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사진도 찍었다.

어느 날, 거실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시며 고향생각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히시며 울음을 삼키셨던 아버지. 언젠가는 아버지 고향을 찾아가 할머니, 할아버지 묘소를 참배하고, 살아계시다면 고모님과 작은 아버님을 만나 뵙고 싶다. 나의 소원은 통일,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은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니,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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