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직후 가난과 질병, 중노동을 달래기 위해 애틀란타의 약사 존 펨버튼은 코카잎 성분과 콜라나무 껍질액을 배합해 강장음료를 만들고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코카콜라와 워런 버핏은 알아도 펨버튼을 아는 사람은 없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또 어떤 펨버튼은 아이폰, 윈도, 전기차를 만들기 위해 '피·땀·눈물'을 흘렸다. 기술만 남고 기술자는 잊혀졌다. 어쩌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사농공상 시대에도 세종의 장영실은 '조선의 시간'을 만들고, 이순신의 나대용은 '조선의 바다'를 지켰다. 사람을 뛰어넘는 기술은 없다. 국가든 기업이든 지속가능하길 바란다면 장인들의 '한 땀'마다 합당한 명성을 부여해야 마땅하다. <글로벌e>가 숨은 명장 찾기에 나선 이유다.

BAT는 제품 카테고리가 정해져 있어 디자이너가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팀은 크게 네 파트로 나뉜다.

"디자인 전략과 트렌드를 읽고 컬러(Color), 소재(Material) 및 피니시(Finish)를 담당하는 'CMF팀'. 제품 산업 디자인 부문에서는 '글로디자인팀'과 '뷰즈・벨로디자인팀'이 있다. 선행디자인을 연구·개발하는 '디자인 디스커버리팀'이 있다."

팀원 대부분은 LG, 소니, 삼성, 다이슨, 화웨이, 앵커 등 전자회사 디자인 경험이 많다. 국적으로는 한국인 4명, 나머지는 인도, 영국, 덴마크, 중국, 대만 등 다양하다. 주로 아시아 출신 디자이너가 많은 편인데 '아시안터치'의 강점을 디자인에 잘 활용한다.

"디자인팀을 꾸리면서 한국에서 같이 일해본 경험이 있던 에이전시와 일하게 됐고 자연스레 팀이 커지면서 한국인을 더 영입하게 됐다. '글로'의 대표 기능인 부스트모드, 아이리스셔터의 디테일 등 많은 부분을 한국인 팀원들이 맡았다. '글로 프로 슬림' 디자인의 초기 콘셉트는 한국팀이 주도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20년 가족을 데리고 영국으로 간 명장은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외국기업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해 여름부터 '글로 하이퍼 X2'디자인을 시작했다. 시제품을 모니터에 들이밀고 돌려보면서 재택근무에 적응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외국인들과 일하는 것도 생소하고 카메라로 소통하는 것도 어색했다."

디자인팀은 제품을 만져가며 일하기 때문에 모니터로 디자인과 제품 프로토타입을 검토해야 했다.

"색상과 사이즈를 고를 때는 실물을 보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재택으로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2020년 초 코로나 대유행 때 런던 도심이 봉쇄되면서 집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수십 차례 택배로 샘플을 주고 받으며 업무를 진행하는데 나중에는 방이 상자로 가득해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가 됐다. 덕분에 팀원들이 어디에 사는지 외우게 됐다."

명장은 절박했다.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다음은 없었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이퍼 X2'는 간절함이 더 잘 비벼진 제품이다. 인생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잘 정리된 것도 있어 뿌듯하다." 

'글로'는 후발주자라도 어드밴티지가 분명히 있다. 더 고민하고 더 다양하게 생각해 선발주자들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만들 수 있다. 시장을 변화시키고 혁신을 만드는 데 후발주자가 큰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명장은 '이기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

"글로를 '카테고리 리더'로 만들고 싶다. 새로운 기술을 접목했을 때 심플하고 간결한, 고객 경험과 상황에 맞춘, 사업적으로 매력있는 디자인 솔루션을 보여주고 싶다."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위해 항상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도 크다.

"BAT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도 일할 수 있다. 그래서 즐겁다. 문화와 음식, 한국에 대해서도 얘기하면서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한편으론 그들에겐 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여서 조심스럽기도 하다."

BAT의 기업문화는 다국적이다.  

"나의 '디자인언어'로 고객과 소통하려면 그 언어를 끊임없이 진화시켜 나가야 한다. 디자인언어를 확장하고 BAT만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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