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목표가 1,500억 원인 야구단이 등장했다. 지난해 매출 1,300억 원을 돌파한 컴투스 야구게임단의 총사령관 홍지웅은 해외시장을 겨냥한 신무기 <MLB 9이닝스: 라이벌>도 실전 투입했다. 홍지웅은 수백만 구단주를 이끌고 있다.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다. 처녀작 <컴프야2008>이 적자를 냈고 <컴프야2009>도 생각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세계 여성경영인 50'에 이름을 올린 박지영 당시 컴투스 대표는 "야구는 게임빌이 잘하는 것 같다"며 "다른 장르를 뚫는 게 낫겠다" 했다. 홍지웅은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야구밖에 없다" 배수진을 쳤다. '구원투수'만 올리면 이길 수 있었다. 경영진을 설득하고 설득했다. "마지막이다." 홍지웅은 연봉을 내주고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9회말투아웃에서 끝내기홈런을 쳤다. <컴프야2010>과 존재감을 각인한 한방이었다. 홈런포는 계속됐다. 국내시장 평정 후 <MLB 9이닝스>를 들고 해외시장에 출사표도 던졌다. 명장이 가는 길에 수백만 구단주도 뒤를 따랐다.

"2009년은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해다. 회사에 폐 끼치지 않았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좀 다른 얘기인데 2004년 우수 개발자로 뽑혀 미국 E3에 갈 기회가 생겼다. 병역특례로 일하고 있었는데 '유승준사태'가 터지면서 '병특'들은 해외로 못 나가게 됐다. 미국비자를 겨우 받았는데 비행기는 타지 못했다." E3와의 인연은 아직도 없다.

"<컴프야2010>은 출시도 빨랐다. 보통 시즌 개막하는 4월초에 출시하는데 두 달이나 먼저 나왔다. <컴프야2009>가 성공했으니까 그 분위기를 빨리 이어가고 싶었다. SKT, KT, LG 순으로 출시했다. SKT 가입자가 제일 많아서다."

<컴프야2010>은 5명이 9개월 동안 만들었다. 스마트폰시대가 개막하면서 <컴프야2011>이 안드로이드마켓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응답하라2009'
내 생에 최고의 해

<컴프야2010>과 <컴프야2011>을 합쳐 누적매출은 22억이 나왔고 다운로드도 75만 건에 달했다.

"<컴프야>를 기획하고 만들면서 '적자만 면하자' 했는데 스마트폰세상이 열리자 100만 다운로드도 꿈이 아니었다. 세상은 변했고 욕심이 생기니 목표도 달라졌다. 그전엔 고생한 기억밖엔 없는데 그땐 신나서 일했다."

회를 거듭하면서 개발인력은 늘어났다. <컴프야>는 매년 출시 시기를 맞춰 1년의 개발사이클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유저들도 계속 늘어나고 게임 콘텐츠도 많아지다 보니 개발인력이 느는 것은 당연했다. 유저 피드백도 챙겨야 해 인력은 항상 필요했다.

"매년 한 명씩 늘다 몇 년 전부턴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부분 스튜디오들은 경영진에게 어떤 게임을 만들겠다 보고하고 컨펌이 나면 팀을 세팅하고 개발에 들어간다. 팀이 커지면 '실'이 되고 더 커지면 '본부'가 되는 식이다. 우리는 좀 특이하게 2006년 파트 단위로 시작했던 개발 조직이 지금 본부까지 커졌다."

야구장르만 만든다. 중간에 개발이 중단되거나 포기한 적이 없어 계속 사람이 늘어났다. 지금은 170명이 넘는다. 피처폰시대에선 개발인력을 많이 넣을 수 없었다. 시장도 작았고 수익구조가 발목을 잡았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컴프야2010>을 연도만 바꿔서 그대로 서비스했다. KBO버전을 만들었으니까 MLB버전도 한번 만들어보자는 새로운 목표가 있었다."

2010년 7월 애플 IOS 최초로 <9이닝스2011>이 출시됐다. 전에도 <9이닝스2009>가 있었지만 MLB라이선스를 못 받았다. 진짜 메이저리그게임으로 개발된 것은 <9이닝스2011>였다. <계속>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