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장채린 기자
  • Economy
  • 입력 2024.10.25 09:37
  • 수정 2024.10.25 10:12

에르메스 Is 와인② 한 방울에 4만 원 '금보다 와인'

최고의 품질, 타협하지 않는 정체성

에르메스는 1837년 창립 이래 품질과 전통을 위한 헌신으로 신뢰를 쌓아왔다. 창립자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는 가죽마구 장인이었다.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리프의 아들이 부실한 안장 때문에 낙마해 사망하면서 왕실과 귀족들은 안전한 마구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소비자와의 신뢰를 중시한 티에리는 맞춤제작으로 그들을 만족시켰다. 최고의 품질로 귀족의 신뢰를 얻었고 에르메스는 정체성을 만들어 갔다.

세대를 거듭하며 제품군을 혁신하고 확장해 나가면서도 브랜드는 전통을 지켰다. 오늘날 에르메스의 아이콘이자 브랜드 변화를 상징하는 '안장가방(Haut à Courroies)'은 1900년 나왔다. 20세기 초 마차의 시대가 끝났다.

티에리의 손자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Émile-Maurice Hermès)는 마구를 넘어 가죽제품, 패션액세서리, 의류로 아이템을 확장했다. 1918년 최초로 지퍼 달린 가죽 골프재킷을 만들었다.

 골프 광고 1929년 [에르메스]
 골프 광고 1929년 [에르메스]

웨일즈 왕자의 요구에 맞춰 기능성과 디자인 혁신을 이룬 결과였다. 1920년대 액세서리, 1930년대 의류가 추가되고, 켈리백(Kelly Bag)과 에르메스스카프 같은 아이콘이 탄생했다. 시대 변화에 따른 니즈를 반영해 소비층이 두터워졌다.

1차대전 때 에밀은 '포디즘(Fordism)'이란 대량생산체제를 살펴보기 위해 미국에 갔다. "에르메스와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고 산업화 이후에도 수공예를 고수했다. 느리지만 완벽한 제품을 제작해 고객의 신뢰와 충성은 여전했다. 

파리 포브르 생토노레 24번가(24 Rue Du Faubourg Saint-Honore)
파리 포브르 생토노레 24번가(24 Rue Du Faubourg Saint-Honore)

파리 포브르 생토노레 24번가(24 Rue Du Faubourg Saint-Honore)로 매장을 이전해 오늘날까지 에르메스 본사로 남아 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철학을 보여 주는 예다.

1930년대 뉴욕 니먼마커스백화점과 제휴해 미국에 진출했다. 말과 마차 로고, 오렌지색 상자의 시그니처 이미지를 확립해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 고급시계, 1980년대 고급생활용품으로 아이템을 확장했다. 

최초의 실크 스카프 [에르메스]
최초의 실크 스카프 [에르메스]

로마네꽁띠도 한정수량과 수작업을 고수한다. 1.8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연 5,000~6,000병분만 생산한다. 피노누아는 부르고뉴 대표 품종이다.

1584년 로마네꽁띠(밭)에 피노누아가 심어진 이후 1945빈티지까지 360년간 같은 뿌리에서 자란 포도로 와인을 담갔다. 포도뿌리흑벌레(필록세라)가 들끓어 모든 나무를 뽑아버려 1945년 608병분의 와인을 끝으로 7년간 로마네꽁띠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1947년 해충에 강한 새 품종으로 다시 밭을 일궜다. 꽁띠왕자가 마신 와인과 같은 와인은 1945년 생산된 608병분이 마지막이다. 2차대전 종결의 의미가 더해져 1945년산빈티지는 경매 최고가인 55만8,000달러(한화 약 7억7,000만 원)에 낙찰됐다.

로마네꽁띠 테루아(Terroir)는 독보적이다. 세계 곳곳에 피노누아가 자라지만 로마네꽁띠의 기후와 장인의 기량을 담진 못한다. 테루아는 특정 지역의 기후와 자연환경이 포도와 와인의 맛에 미치는 영향을 말한다. '땅'을 뜻하는 프랑스어 '떼르(terre)'에서 유래했다. 기온·강수량·일조량은 포도의 성숙도와 산도를 결정한다. 바다와 가까운 다른 포도산지와 달리 내륙에 있어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정하다.

겨울을 견뎌낸 포도는 한여름 햇빛으로 영글어간다. 석회질 토양에서 자란 포도는 미네랄이 풍부하다. 밭마다 다른 미생물이 발효 시 독특한 향미를 부여한다. 포도밭 관리부터 양조까지 자연을 고스란히 담기 위해 장인들은 오랜 기간 교육을 받는다. 포도가 익을 때까지 내버려둔 후 손으로 수확하는 13세기 때 방식을 고수한다. 1989년까지 포도를 밟아 즙을 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효모를 사용한다. 발효 후엔 오크통에 가라앉은 찌꺼기만 걷어내고 그대로 둔다. 여과하지 않고 풍미와 질감을 유지하며 숙성시킨다. 병입 후 향미는 더 깊어 진다. 《계속》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