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둘째 모두 심통이 났다. 큰맘 먹고 제주도까지 왔는데 음식도 여행도 맘에 안 드는 눈치다. 파도 때문에 '이호테우' 물놀이를 취소한 탓이 컸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은 아이들 입이 연신 삐죽거린다. 숙소로 가기엔 아쉬워 검색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남편이 물었다. "괜찮겠어?" '넥슨'하면 '게임'이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순간 "넥슨!" 아이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스마트폰은 어느새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넥슨컴퓨터박물관을 다녀온 엄마들의 이야기를 재정리한 기사입니다. (글로벌e 월간지 8월호)

3층은 Hidden Stage로 컴퓨터가 어떻게 역사를 바꿔왔는지 확인하고 즐기는 공간이었다. 마우스부터 여러 제품의 변천사, 그리고 휴대전화같이 일상생활과 밀접한 제품들의 과거와 현재도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전자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오픈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남편은 수십 대의 컴퓨터에 넋을 빼앗긴 듯 전시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럴 땐 부지런도 하다.
어느새 아이들은 장난감처럼 보이는 중앙의 전시대에 몰려가 있었다. 장난감 같은 걸 가리키며 아이들이 말했다. "엄마 <메이플스토리>야" 응? 메이플 뭐? 잠깐 마트에 있는 단풍모양 시럽을 떠올렸지만 입을 닫았다.
보아하니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봇완구였는데 게임 캐릭터란 말인가 보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아이들은 이미 하나씩 찜해 자기라고 우겼다. 귀여워라.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우리 때도 그랬다. 디즈니 만화나 동화책의 공주가 됐으면 좋겠다고. 어쩌면 게임캐릭터는 아이들이 되고 싶은 슈퍼히어로나 왕자·공주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한 층 더 남았네. 여보, 그쪽 가보자" 3층이 끝이 아니었다고? 남편이 더 재미있는 데가 있다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지하 1층 Special Stage였다. 아이들이 일제히 "메이플이다" 하며 뛰어갔다. 그곳은 박물관을 설립한 넥슨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말한 <메이플스토리>와 언젠가 한 번은 들어본 적 있는 배경음악의 주인공 <카트라이더> 등 다양한 게임이 전시돼 있었다. 남편이 <카트라이더>를 한번 해보라고 했다.
설명대로 했는데도 시종일관 벽에 충돌했다. "엄마 바보"라는 말에 심기일전해봐도 역시 무리다. 운전과는 다른 것 같다. 첫째가 나섰다. 몇 번 충돌하긴 했지만 빨리 들어왔다.
둘째도 비슷했다. 남편은 은근 잘했다. 한 번도 충돌하지 않고 미끄러지는 기술을 써 들어왔다. 아이들이 "아빠 잘해!"하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낸다.
"내가 왕년에..." 얼른 자리를 옮겼다. 걸음에 따라 넥슨의 역사, 게임의 역사가 지나갔다. 멋진 그림도 많았다. 개발자들이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린 원화를 옮겨놓은 것이라고 했다.

예쁜 캐릭터부터 무서운 괴물까지 다양한 일러스트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니 묘한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내 눈에도 이렇게 흥미로운데 아이들 눈에는 어떨까.
그림에 흥미가 있는 둘째가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예쁘게 생긴 마법소녀를 가리키며 웃는 모습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못지않게 신난 남편도 인상적이었지만 이런 것도 있구나, 게임이 무조건 이상한 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
굿즈샵에서 둘째가 고른 그림엽서와 인형을 샀다. 첫째는 의젓하게 괜찮다고 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 내 눈을 피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게임기나 컴퓨터 둘 중 하나를 사달라고 하는 눈치였다. 그래. 이번에는 봐줄게. 너무 비싼 거만 아니면 말이야.
시원한 음료수와 맛있는 빵까지 먹은 후 차로 돌아왔다. 첫째는 뭐가 신났는지 아빠한테 난 잘 모르는 이야기를 잔뜩 하고 있고 둘째는 인형을 안고 엽서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숙소로 향하는 길. 근처에서 밥먹기로 했다. 시끌벅적한 차 안, 누구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지 않았다. 내가, 엄마가, 우리 가족이 바라던 진짜 모습이었다. 이번 제주여행은 합격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