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둘째 모두 심통이 났다. 큰맘 먹고 제주도까지 왔는데 음식도 여행도 맘에 안 드는 눈치다. 파도 때문에 '이호테우' 물놀이를 취소한 탓이 컸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은 아이들 입이 연신 삐죽거린다. 숙소로 가기엔 아쉬워 검색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남편이 물었다. "괜찮겠어?" '넥슨'하면 '게임'이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순간 "넥슨!" 아이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스마트폰은 어느새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넥슨컴퓨터박물관을 다녀온 엄마들의 이야기를 재정리한 기사입니다. (글로벌e 월간지 8월호)

글로벌e 8월호 넥슨컴퓨터박물관 편
글로벌e 8월호 넥슨컴퓨터박물관 편

뛴다. "아이들의 기(氣)는 발바닥에 있어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해." 엄마 말에 동의한다. 넥슨컴퓨터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첫째와 둘째 모두 달리기시작했다.

저 에너지를 다 써야 밤이 편할 줄 알지만 명색이 박물관인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남편도 뛴다. 아이들을 잡겠다는 건지 자기도 좋아 저러는지 모르겠다. 애가 셋이 됐다.

깔끔한 시설, 넓은 공간. 그래. 뛰고 싶겠지. 서울의 여러 박물관을 가봤지만 울창한 숲에 자리잡은 곳은 처음이다.

아이들이 멈췄다. 입구에 있는 눈망울이 반짝거리는 녹색 인형(게임 〈메이플스토리〉의 몬스터 캐릭터 슬라임) 앞이다. 아이들이 서로 안다고 설명을 해주는데 남편이 나에게 '도.와.줘' 눈빛을 보냈다. 나도 모른다. 귀엽다는 생각은 들었다.

박물관은 예약제로만 운영되는데 입구에서 당일 예약을 안내해줬다. 다행히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티켓을 받고 있는데 아이들이 외쳤다. "엄마, 키보드!" 돌아보니 정말 거대한 키보드가 있었다. 물품 보관함이었다. 내가 봐도 신기한데 아이 들 눈에는 더 신기했을 것 같다. 걸음이빨라진다.

글로벌e 8월호 넥슨컴퓨터박물관 편
글로벌e 8월호 넥슨컴퓨터박물관 편

흥분한 아이들의 손에 끌려 들어간 1층 WELCOME STAGE. 수많은 컴퓨터와 전자회로가 있었다.

천천히 중앙으로 갔다. 안내판엔 '컴퓨터의 마더보드를 인체도로 재현, 관람객이 회로에 흐르는 데이터가 돼 입출력기기와 CPU, 메모리, 그래픽, 사운드, 네트워크로 이어지는 과정과 장치별 발전사를 확인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남편이 아이들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각각의 화면에는 과거 컴퓨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데이터를 출력하고 확인하는지가 담겨 있었다.

"아빠, 저거 나 알아!" 첫째가 나선다. 벽면 가득 아이콘이 펼쳐져 있다. 나도 남편의 맥북과 윈도우에서 본 것 같다. 신난 아이들이 앞장섰다. 알록달록한 무늬로 꾸며진 모니터가 있다.

"80년대 디자인이 이랬나?"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iMac G3,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애플이 개발해 판매한 개인용 컴퓨터야." 남편이 설명 문구를 읽었다. 비슷한 모양을 어릴 때 본 것 같았다.

그게 애플 제품이었다니! 손에 들린 아이폰을 슬쩍 봤다. 격세지감. 아이들이 태어나기 한참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제품이었다. 옆으로 넘어가니 'Apple 1'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 전시제품.

카세트테이프가 들어가는 곳부터 오래된 모니터까지 남편과 아이들 눈을 사로잡았다. "아빠, 이게 뭐야?" 첫째의 질문에 남편이 설명문을 읽어준다. "그건 나도 알아" 사방에는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커다란 설명문구들이 많았다.

"최초의 애플 컴퓨터래" 활짝 웃는 아이. 남편은 기특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느새 남편은 초등학생이 돼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1층을 누비고 있다. 파란 화면의 모니터가 보인다. 익숙한 화면. PC통신이다.

글로벌e 8월호 넥슨컴퓨터박물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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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무관심했던 나와 달리 컴퓨터로 뭔가를 끊임없이 했던 오빠가 생각났다. 깜빡거리는 커서. 무심결에 키보드를 쳤다. '오빠, 철 좀 들어.' 그때 답변이 왔다. '너나 들어.'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남편이 건너편에 서 있다.

다른 컴퓨터에서 입력하면 채팅이 되는 식이었다. 아이가 셋이다. 금방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는 아이들. 삼성 모니터와 카세트테이프가 들어가는 컴퓨터부터 금성사(LG) 제품도 전시돼 있었다.

운영체제의 변천사도 화면에 나와 있었는데 윈도우까진 알겠지만 저렇게 많은 것이 있는지는 몰랐다. 아이들이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이게 뭔지 알아?" "몰라!" 우렁찬 대답과 함께 돌아온 건 브이포즈다.

좋다고 찍는 남편.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단순 전시가 아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많았는데 남편이 제일 좋아했던 건 CPU테이블이었다. CPU가 들어 있는 걸 커다란 화면테이블에 올리면 설명을 해주는 건데 집에 있는 PC 얘기를 하면서 나에게 계속 설명했다.

연도를 보여주면서 "이게 우리 집 컴퓨터야"라고 하는데 연도를 보니 10년 전 거다. 바꾸자는 말이 나올까 봐 얼른 2층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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