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둘째 모두 심통이 났다. 큰맘 먹고 제주도까지 왔는데 음식도 여행도 맘에 안 드는 눈치다. 파도 때문에 '이호테우' 물놀이를 취소한 탓이 컸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은 아이들 입이 연신 삐죽거린다. 숙소로 가기엔 아쉬워 검색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남편이 물었다. "괜찮겠어?" '넥슨'하면 '게임'이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순간 "넥슨!" 아이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스마트폰은 어느새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넥슨컴퓨터박물관을 다녀온 엄마들의 이야기를 재정리한 기사입니다. (글로벌e 월간지 8월호)
2층 Open Stage Between Reality and Fantasy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와, 옛날 게임이네" 남편을 말을 듣고 나서야 이곳에 전시된 것이 게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서 나가는 남편 손을 잡았다.
"게임은 좀 그렇지 않아?" 같은 반 학부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가 몰래 게임을 하고 있더라고요. 남편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남편은 내 얼굴을 한 번 본 후 고개를 돌려 전시공간을 봤다.
우리 애들도 보였다.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 박물관이잖아. 말린다고 안하겠어? 우리도 알아야지 나쁜 건 막고 괜찮은 건 하게 할 수 있잖아. 가보자." 요지부동인 날 끌고 남편이 앞장섰다.
"여보 이거 봐봐" 남편이 가리킨 곳에는 <창세기전>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이거 친구가 했었어" 남편도 게임은 잘 몰랐고 친구가 하는 걸 봤다고 했다. 그때 생각이 났는지 남편 얼굴에 옅은 미소가 보였다.
이렇게 많았나. 전시공간을 보면서 놀랐다. 그곳에는 PC게임과 잡지, 그리고 세대를 나눈 게임기가 있었다.
세대는 시대에 맞춰 발전된 콘솔들을 묶는 기준이었다. 컴보이부터 재믹스, 메가드라이브 등 옛날 게임기부터 남편이 사자고 했던 플레이스테이션도 있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게임기 앞에 앉아 있었다.
스마트폰 터치에 익숙한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컨트롤러를 만지작거리더니 금방 시작했다. "엄마 이거 봐" 배가 나온 듯 둥근 브라운관에 귀여운 캐릭터가 움직이고 있었다.
직원 한 분이 롬팩(게임 카트리지의 다른 말)을 교환하면 다른 게임을 해볼 수 있다고 했다.남편이 오라고 손짓한다. 이것저것 알려주는데 잘 모르겠다. 내가 해본 게임은 <뿌요뿌요>였다.
들어올 때 입구에 보였던 녹색 인형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색깔이 다양했다. 버튼을 눌러보니 회전했고 그걸 모으니 터졌다. 어설프게 움직이는 내 손을 본 아이들이 "엄마 노란색(버튼) 눌러"라고 지시한다.
너흰 그걸 어떻게 아는 거니. 남편은 익숙한 듯 잘한다. 이내 둘째에게 조이패드를 넘긴 남편. 딸에게도 난 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내 승패와 상관없이 이미 신난 상황이었다.
남편은 연신 "오, 이거 알아!"를 남발하고 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통에 정신은 없었지만 싫진 않았다. 아빠와 아이들이 저렇게 떠드는 모습도 오랜만이다.
공간마다 빼곡히 차 있는 게임기와 게임들을 보면서 나 역시 흥미로웠다. TV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기계를 몰라도 스마트폰은 만질 수 있고 에이컨과 세탁기, 건조기만 다뤄도 불편하지 않아 그 외의 것들을 무시하고 살았던 걸까. 이렇게 신기한 제품이 세상에 많이 나왔는데도 몰랐다니. 내가 해보니 아이들이 왜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한쪽에는 VR(가상현실) 기기가 있었다.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 쓰면 가상세계가 보인다고 하는데 남편은 무섭지도 않은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썼다. 커다란 화면에 남편이 보는 세상이 보였다.
남편이 신기한지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여보도 써봐" 싫다고 하는데도 아이들까지 가세해 쓰라고 난리다. 처음에는 잘 안 보이는 느낌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선명하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 보였다. 화면으로 보이던 그 공간이었다. 두 손에 쥐고 있던 컨트롤러를 바라봤다. 내가 움직이는 것과 똑같이 움직였다.
직원이 친절하게 엄지를 누르라고 했는데 한참 헤매다 눌렀다. 화분을 들 수 있었다. 신기해라. 세상에 없는 존재를 손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엄마 던져" 아이의 말에 놀라 움직이자 화분이 힘없이 떨어졌다.
'쨍그랑' 소리에 놀라 뒤로 살짝 빠졌다. 진짠 줄 알았나 보다. 그렇게 나의 첫 가상현실 체험이 끝났다. 아쉽게도 아이들은 하지 못했지만 엄마가 화분 깨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는지 연신 놀려댔다. 괜히 땀이 났다. 민망한 나는 다음 층으로 발길을 옮겼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