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르신에게 밥을 차려드리면 '한 끼의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다. 옷을 빨아드리면 '하루의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다. 머리를 깎아드리면 '한 달의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화곡3동에는 어르신을 위하는 천사들이 산다.
서울 화곡3동에는 이상한 헤어숍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오전에만 문을 여는데 선착순으로 들어가 ‘맛집 웨이팅’ 하듯 번호표를 받아야 한다. 큰 거울 앞에 미용의자는 세 개, 헤어디자이너는 둘인데 한 명일 때도 있다. 혼자서도 세 시간 안에 서른 명 이상 커트가 가능하다. 빠르다고 실력을 의심하면 안 된다. 자로 재는 듯하는 눈빛과 눈썹 정리까지 손놀림이 딱 봐도 '가위손'이다. 고객 평균 연령이 80은 돼 보이는데 더 이상한 건 요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 것이다. 화곡3동주민센터 3층 한 켠은 매월 마지막 주 아침이면 헤어숍으로 탈바꿈한다.

1999년 시작한 '어르신 이·미용' 봉사는 허우인 '에뿌제헤어부띠끄' 원장의 제안으로 주민자치위원회 사업으로 본격화했다. 허 원장과 허선임 디자이너가 가위와 빗을 잡고 주민자치위 위원들과 주민센터 직원들이 보조한다. 어르신들을 반기며 번호표를 나누어주고, 대기석으로 안내하고, 순서대로 미용의자에 앉힌 후 가운을 입혀주고, 손질을 마치면 머리카락을 털어주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고, 대기석에서 어르신 옆에 앉아 안부를 물으며 말벗이 돼 주는 일련의 과정이 일사불란하다.
코로나펜데믹 전에는 50명 넘게 오기도 했는데 그때는 허 원장이 직원을 셋이나 데려왔다. 3동에 거주하지 않는 어르신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 난감할 때도 있었다. 평균 30명 이상이니 26년이면 이곳에서 머리를 깎은 인원이 1만에 육박한다. 허 원장은 1993년 강동시립양로원에서 가족과 함께 이·미용봉사를 시작해 화곡동으로 이사 온 후 2005년부터 '해피라이프봉사단'에서 봉사를 계속했다.

봉사도 유전일까. 경기도 안성의 어느 마을은 초등학교로 가는 10리 길이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길을 '허선생꽃길'이라 부른다. 허 원장의 아버지가 50여 년 전 교사로 근무할 때 제자들과 가꾼 길이다. 먹고살기 힘들어 봉사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 이웃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꽃길을 만들었다. 아이들에겐 "꽃길만 걸으라"는 바람을, 어른들에겐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부탁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물려받은 허 원장은 '한들한들' 코스모스길을 가꾸듯 어르신들의 머리를 '산뜻하게' 손질한다.
"커트는 하루 70명도 거뜬해요. 체력 하나는 타고났죠. 에뿌제는 불황 때도 손님이 없는 게 아니라 일손이 달려요. 눈 코 뜰 새 없어 점심 굶기를 밥먹듯 한답니다."
허 원장이 쉴 쉬간을 쪼개 20년째 이·미용봉사에 쏟아붓는 것은 봉사의 소명이나 의무감 때문만은 아니다.
"그냥 바쁜 것도 행복한데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어르신들에게 작은 행복이라도 드리면서 바쁘면 행복은 두 배가 되죠."

어르신에게 식사를 차려드리면 '한 끼의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다. 어르신의 옷을 빨아드리면 '하루의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다. 어르신의 머리를 깎아드리면 '한 달의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다. "100세가 넘은 어르신도 단골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오시지 않아 서운해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코맥 매카시 소설)고 하지만 화곡3동엔 어르신을 위하는 천사들이 산다. 허 원장은 초파일(음력 4월 8일)이 생일이니 부처님이 달마다 내려와 어르신들의 머리를 만져주는 것일까.
봉사정신은 딸에게도 유전됐다. 대학 때 아나운서를 준비하다 "엄마 뒤를 잇겠다"며 국내외 대학에서 헤어디자인 공부를 하고 엄마와 함께 이미용봉사도 열심히 했다. 허 원장은 강서구 헤어숍 원장들과 작품전을 열 때 중심 역할을 했을 정도로 경력과 실력이 출중하다. 강남에서 오는 손님들이 "화곡동에 있기 아까운 솜씨"라고 하지만 허 원장은 화곡동에 없어서는 안 될 따듯한 가위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