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더 나은 나를

갈망하고 늙음을 두려워해

본질보다 껍질에 집착하는 사회

 젊음과 아름다움을 조장하는 엔터산업과 허상을 좇는 대중

 욕망의 끝이 파괴와 혐오임을 알면서도 거짓된 아름다움은 고착화된다.

껍데기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아주 잔인하고 솔직하게 거울을 들이미는 영화

수(마가렛 퀄리) /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
수(마가렛 퀄리) /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

와우! 지난해 칸에서 기립박수가 쏟아진 <서브스턴스>를 만났다. 미친 아이디어의 SF적 발상, 육신을 갈아넣은 두 배우의 광기 넘치는 연기, 하드코어(hard core)와 고어(gore),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비주얼, 경종을 울리는 탄탄한 메시지까지. "진짜 미쳤다"는 한마디로 충분했다.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어느덧 아침방송에서 에어로빅비디오나 찍는 신세가 됐다. 그마저도 젊고 예쁜 신인에게 뺏길 위기다. 퇴출 직전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입원 중 '서브스턴스'의 존재를 알게 되고 고민 끝에 그 물질을 주입하자 등판이 열리고 '더 나은 나'가 탄생한다. 

나와 더 나은 나, 둘은 육체가 나누어진 하나의 자아로 한 주를 번갈아 살아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새로 태어난 수(마가렛 퀄리)는 젊고 눈부시게 아름답다. 광나는 육체와 생기 넘치는 얼굴에 스파클의 노련함이 더해지자 승승장구한다. 1주가 지나 원래의 내가 되자 절망이 밀려온다. 빨리 1주가 지나 '더 나은 나'가 활약하길 바란다. 균형이 깨지는 데 2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는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엔터업계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Remember you are one!"(넌 하나란 걸 명심해!)

시간이 더 필요해진 수는 이 경고를 무시하고 스파클(모체)의 시간을 빼앗고 만다. 패널티로 급격히 노쇠해진 스파클은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며 피폐해진다. 대리만족에 눈이 먼 스파클은 파멸해 가면서도 욕망을 멈추지 못한다. 

하비
하비

영화는 엔터업계와 대중에 만연한 성상품화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엘리자베스 소속사 대표 이름이 '하비'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전 미라맥스 대표 하비 와인스타인은 현재 다수의 성폭행 혐의로 수감 중이다.

영화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도 묻는다. 나의 대답도 자못 진지하다.

"아름다움, 자존감, 우아함, 순수함? 개나 줘 버려!'

대중은 끊임없이 뉴페이스를, 어리고 싱싱한 바디를 갈구하고 소비한다. 이런 생리를 잘 아는 엔터업계는 계속해서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를 조장하고 찍어낸다. 

데미 무어
데미 무어

스파클은 현실에도 넘쳐난다. 그녀를 연기한 데미 무어 역시 <사랑과 영혼>(1992)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대중과 업계의 사랑을 받으며 '소비물'이 됐고 <어 퓨 굿맨> (1992), <은밀한 유혹>(1993), <폭로>(1994)의 연이은 성공으로 헐리우드는 그녀에게 가장 비싼 몸값을 매겼다. 이후 작품들의 흥행 저조로 값이 떨어지더니 복잡한 애정사와 전신성형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데미 무어는 데미 무어를 연기한 게 아닐까. 전신성형과 서브스턴스 주입의 본질은 같다. 누가 그녀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나? 영화의 제목인 '서브스턴스(substance)'는 '물질'과 '본질' 두 가지로 해석된다. 물질을 주입해 본질을 환기하는 존재론적 화두로 관객을 괴롭힌다.

연기 인생에서 전무후무할 굴욕적인 괴수와 노인 분장을 감내하며 혼신의 연기를 펼친 데미 무어는 데뷔 45년 만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면서 두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서브스턴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으로 타락한 인간을 괴물로 표현하며 자존감을 상실한 인간이 욕망 앞에서 얼마나 비극적인지 가감없이 보여준다.

열등감과 자기비하, 질투심으로 자멸하는 스파클의 마지막 모습은 한없이 처절하다. 대중과 엔터업계가 탄생시킨 괴물 '몬스트로 엘리자수'가 피칠갑으로 대중에게 응징하는 모습은 잔인하다 못해 구역질을 선사한다. "니들도 한패 아니냐?"고 관객들을 응징하는 듯하다. 노약자, 임신부가 아니라도 <서브스턴스>는 빈속에 보길 권한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