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개봉했을 때 한국 영화 사상 유래 없는 플롯과 리얼리즘으로 평단의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그 해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피칠갑’ B급 누아르 <저수지의 개들>이 한국에서 선을 보인다. 북미에서는 1992년 개봉했지만 1994년 <펄프픽션>이 흥행하며 뒤늦게 공개된 것이다. 향후 25년간 8편의 대작을 연출한 거장의 탄생을 알렸다. 무려 저 두 작품이 데뷔작이라니 떡잎부터 달랐다. 그들은 자신이 연출한 모든 영화의 각본을 직접 썼을 정도로 본투비 아티스트의 면모를 뽐냈다.

1996년 대학생이였던 나는 타란티노에 열광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무자비한 전개와 장황한 대사 맛, B급 감성의 병맛 유머가 덕질을 불렀다. 차기작 <펄프픽션>에서는 입체적인 각본과 독특한 캐릭터 구현으로 타란티노식 스토리텔링이 한 단계 진화한다.
네 번째 작품 <킬 빌>(Kill Bill)에선 감독의 천재성과 연출력이 막대한 자본에 힘입어 폭발한다. <킬 빌>은 온갖 오마주의 짬뽕으로, 1부는 일본 사무라이영화와 고어애니메이션을 2부에선 홍콩무협영화와 마카로니웨스턴을 차용해 오락영화의 끝을 보여준다.
<킬 빌>은 빌을 죽이는 복수의 여정을 다뤘다. 주제의식이 선명한 제목의 선택이다. <저수지의 개들>이란 제목은 감독이 비디오대여점 직원 시절 손님이 'aux evoir'(안녕)를 'reservoir'(저수지)로 잘못 알아들은 데서 비롯된다. 영화 제목으로 꼭 써먹어야지 생각하고 마침 ‘저수지의 개들’을 다룬 내용에 찰떡인 데뷔작 제목으로 낙점된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빅히트 한 <저수지의 개들>은 타란티노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날것의 수작으로 아직도 회자된다.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는 그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 잘 만든 영화는 그 자체로 장르가 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2019)가 그의 9번째 작품인데 한 편만 더 찍고 은퇴한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다시 홍상수로 돌아가 보자. 1996년 데뷔해 최근까지 25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했다. 여타 거장 감독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다. 박찬욱 감독은 <달은 해가 꾸는 꿈>이란 ‘졸작’으로 데뷔했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로 대박을 치며 자본과 작가주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지 않는가!
홍상수는 데뷔작이 박찬욱, 이창동 <초록물고기>에 비해 월등했는데도 대중 또는 자본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영화를 쉬지 않고 만들고 있다. 어제 본 듯한 오늘, 오늘을 붙여넣기 한듯한 내일의 지리멸렬한 반복 속에 사소한 차이를 발견했다면 당신은 그의 영화 절반은 이해한 것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홍상수 영화 중 유일하게 원작이 따로 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으로 누가 봐도 홍상수 영화다. 저예산의 틀에서 끊임없이 플롯을 실험하고 내러티브를 연구한다. '홍상수월드' 특유의 작가주의가 바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그의 장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