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이임광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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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08 14:46
  • 수정 2025.07.09 12:59

큰별산악人[1] 김평진 산악대장···'100대 명산' 뽑은 지리산 블랙야크

'큰별'이 믿고 따르는 '북극성'···훈남 山해설사, 인문지리 1타강사
중2 때 지리산 종주···30대 중반 100회 돌파, "지리산은 인생山"
성균관대 법대 산악대장···"한때 미친 골프도 결국 등산에 져"
춘클릿지 암벽 추락 부상···"산에서 다친 다리, 산에서 고쳤다"
서울시산악연맹 홍보이사 15년···'블랙야크 명산100' 선정위원
육군학사장교 32기 수석, 707 소대장···헌병교육단서 박정훈 대령과 인연
'별' 잡는 '다이아몬드'···군헌병수사관 시절 40여 장성 기소
"인생은 등산···오르내리기 반복하며 백두대간처럼 뻗어나갈 것"

춘천 의암호 '춘클릿지'는 경치 좋기로 유명한 암벽코스지만 김평진 대장에겐 악몽 같은 곳이다. 2008년 김 대장은 선등(리더)으로 춘클릿지를 오르고 있었다. 인수봉에서 5년 넘게 자일(로프)을 잡았고 석 달 전 선등 데뷔도 성공해 자신감이 있었다.

3피치까지는 가뿐했다. 4피치 10미터 지점 볼트에 자일을 걸어 중등, 말등으로 내려줘야 하는데 9미터 지점에서 드르륵---. 거친 화강암인 인수봉 벽과 달리 춘클릿지는 편마암이라 미끄러운데 김 대장이 걸려든 것이다. 선등이 자일을 걸기 전에 미끄러지면 올라간 높이(달고 간 자일 길이)의 두 배만큼 추락하게 된다. 선등 사고가 치명적인 건 그래서다. 

김 대장은 9미터 지점에서 떨어졌으니 4피치 시작점을 지나 9미터를 더 떨어져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다. 문제는 추락이 멈춘 순간 자일의 탄력으로 튕겨 바위벽에 부닥치는 것이다. 다행히 김 대장의 몸은 꽤 널찍한 바위 위로 향했다. 아악! 착지하는 순간 쓰러졌고 일어날 수 없었다. 오른발이 먼저 닿으면서 복사뼈(거골)가 빠지고 만 것이다.

119구조대가 도착해 인근 한림대병원으로 갔지만 의료진은 속수무책이었고 김 대장은 아내가 수간호사로 근무하는 세브란스 응급실로 이송됐다. 콜을 받고 온 정형외과 족부전문의(과장)는 "거골 탈구는 군의관 때 딱 한 번 봤다"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통은 발바닥이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면 발목뼈가 복합골절로 부서지거나 척추를 때려 하반신마비가 되는데 김 대장은 가는 뼈 네 개만 부러지고 대신 거골이 빠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의사와 남자간호사 몇이 힘을 모아 발을 잡아 빼 접골을 시도했다. 마취를 했는데도 까무러칠 만큼 아팠다. 세 번 만에 '툭' 하더니 복사뼈가 제자리로 '쏙' 들어갔다.

의사는 "거골 탈구는 30~40년에 한 번 나올까 하는 케이스"라며 "학계에 보고하고 논문을 쓸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인데다 "치료비도 깎아준다"고 해 흔쾌히 허락했다. 입원치료를 받는 두 달 동안 전국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와 학생들이 몰려왔고 김 대장의 복사뼈는 살아 있는 연구자료가 됐다. 

골절된 네 곳은 핀을 박으면 됐지만 인대가 문제였다. 복사뼈가 빠질 정도였으니 인대가 세 배나 늘어난 건 당연했고 늘어진 만큼 가늘어졌다. 의료진은 "완치는커녕 퇴화돼 굳어지면 오른발을 영영 쓰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3분의 1로 가늘어진 인대를 지탱하려면 근육을 세 배로 키워야 했다. 피나는 재활운동이 시작됐다. 사고 후 넉 달 만에 목발을 짚었고, 한 달 후 목발 없이 집 안에서 걸음마를 시작했다. 두 달 후 화곡1동 골목을 돌아다녔고, 석 달 후 봉제산에 올랐다. 아내는 "산에서 죽다 살아나 또 산에 간다"며 이혼까지 운운했지만 김 대장은 "산에서 다쳤으니 산에서 고치겠다"며 날마다 배낭을 꾸렸다. 사고 1년 2개월. 김 대장은 관악산 정상에 올랐다. 

김 대장은 1971년 나주 금천에서 태어났다. 광주 용봉초를 졸업하고 야구 잘하는 동성중에 들어가면서 무등산을 뒷산처럼 올랐다. 그땐 동성중이 동구 계림동에 있었다. 토요일 12시 수업을 마치고 교문 앞에서 버스로 20분만 가면 무등산 입구에 도착했다. 원효사에서 중봉으로, 중머리재를 돌아 토끼봉, 바람재까지 갔다 왔다. 일요일엔 화순으로 빠져 안양산, 백마산까지 올랐다. 배낭도 없이 운동화 신고 면바지 입고 다녔지만 마음은 엄홍길 대장이었다.

중학생, 고1, 고3 때
중학생, 고1, 고3 때
대학생 때
대학생 때

1985년 2학년 땐 반친구와 지리산을 종주했다. 40km 이상을 25시간 이상 오르내리는 고난도 코스였다.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 천왕봉(1,915m)을 다 올라야 종주였다.(성삼재→노고단→임걸령→삼도봉→반야봉→화개재→연하천→벽소령→세석→촛대봉→연하봉→장터목→제석봉→천왕봉→로타리→중산리)

송종운 큰별산악회장도 김 대장과 용봉초 동기인데 학창시절엔 알지 못하다가 30년도 더 지나 산악회에서 만났다. 무등산 정기가 맺어준 인연일까.

송종운 큰별산악회장과 광주 용봉초 동기다.
송종운 큰별산악회장과 광주 용봉초 동기다.

광주 숭일고에 들어가서도 주말을 지리산에서 보냈고, 성균관대 법대 시절에도 지리산 종주는 계속됐다. 금요일 과목은 수강신청도 하지 않았다. 목요일 서울역에서 밤 10시 40분 호남선 무궁화호를 타면 새벽 3시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그 시간에 내리는 승객은 구례사람이 아니라 다 등산객이었다.

택시 타고 성삼재까지 30분쯤 걸렸고 요금은 5,000원이었다. 새벽 4시 산행을 시작해 종주하고 토요일 밤 서울로 올라왔다. 한 달에 두 번도 갔다. 처음엔 혼자였지만 하나둘 동행하는 친구들이 생겼고 어느새 서른 명 이상을 이끄는 산악대장이 됐다. 지금도 동창회에서 "평진이 덕분에 지리산을 처음 가봤다"고 말하는 친구가 많다.

대학 3학년 때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
대학 3학년 때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

김 대장은 산을 좋아하고 지리산을 사랑했다. '백무동-노고단-천왕봉' 당일코스 빼고 지리산 종주만 카운팅한 적이 있다. 30대 중반 100번을 돌파한 후부턴 세기를 그만뒀다. 

"지리산에 가면 마음이 편해져요. 지리산은 죽기 전에 한 번은 가봐야 할 산입니다. 같은 산을 100번 가도 갈 때마다 다른데 지리산은 더 그렇습니다. 가을 지리산이 가장 좋아요."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 해외원정도 준비했는데 고시 준비로 포기해야 했다. 회사 다닐 때 업무 때문에 배운 골프에 빠진 적이 있다. '8자싱글'이 될 때까지 7번아이언만 휘둘러 '7'자가 지워질 정도였지만 골프가 등산을 이기진 못했다. 결국 산이 좋아 골프를 포기했다.

김 대장은 현대전자(지금의 SK하이닉스)에 근무하던 2003년 대한산악연맹 산하 서울시산악연맹에서 홍보이사를 맡아 15년을 봉사했다. 2012년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으로부터 "'한국의 100대 명산' 선정위원으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00대 명산의 효시는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관광객 유치를 위해 1986년 전두환정권이 산림청에 지시해 급조한 것이었다.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아 산림청은 다시 100대 명산을 선정해 공표했다.

하지만 국립공원 지정이 확대되고 자연보호정책이 강화되면서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 중 네 곳은 들어갈 수 없게 됐다. 설악산 밑 점봉산도 그중 하나다. 김 대장도 대학 때 올라가 봤는데 지금은 야생화 보호를 위해 '입산금지'다. 산림청이 가보라고 선정한 산에 가는 게 불법이 된 것이다.

지자체들도 중앙정부가 선정한 100대 명산에 이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별로 안배하면 명산이 많은 전남은 손해가 막심했다. 서른넷에 '산림청 100대 명산'을 완등한 김 대장도 자신이 명산이라 생각하는 산 중에 100대 명산에 포함되지 않은 산이 많았다. 김포 문수산이 대표적이었다.

지리산 종주 기념 메달, 배지, 입장권
지리산 종주 기념 메달, 배지, 입장권(1992년)

김 대장은 '블랙야크 명산100' 선정위원(7명)으로 2년 동안 답사와 논의를 거쳐 2013년 '블랙야크 명산100'을 선정해 발표했다.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면 정상에 오를 때마다 GPS로 인증되고 완등하면 메달과 기념품도 받을 수 있어 인기다. <한국의 산하>(2012년), <월간산>(2018년)을 비롯해 단체와 개인이 선정한 '100대 명산'도 많지만 '블랙야크 명산100'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00대 명산으로 지정되면 사람들이 찾아오는 만큼 지자체 간 경쟁이 치열했고 민원도 많았다. 전북의 불만이 가장 컸다.

"무주 적상산은 낙차유역변경식 발전소 때문에 차를 타고 올라가면 정상까지 50미터밖에 안 돼 선정했다 뺐어요." 

곡성 동악산과 통영 사량도 지리망산도 추가로 넣었는데 안 됐다. 심사숙고한 만큼 '블랙야크 명산100'은 참신하다. 김 대장이 6월 29일 큰별산악회를 이끌고 다녀온 유명산(양평·가평)도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포함돼 있다.

김 대장이 춘클릿지에서 추락 때 착지하면서 복사뼈가 빠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발이 지면과 수직이 아니라 약간 비스듬히 닿았는데 이는 낙하산이나 헬기레펠에서 훈련하는 착지법과 닮았다. 김 대장은 특전사 707특임대 장교 출신이다. 707특임대는 옥상에서 레펠 타고 내려가 유리창 깨고 들어가는 훈련을 밥 먹듯 한다.

김 대장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1998년 육군학사장교(32기)로 임관했다. 임관 때 1,000명 넘는 동기 중 수석을 차지해 국방부장관 표창도 받았다. 법대 출신이어서 군사경찰(헌병) 병과를 받았고 707특임대 헌병수사장교로 배치됐다.

1998년 학사30기 수석으로 소위 임관. '미녀와 야크'
1998년 육군학사 32기 수석으로 소위 임관. '미녀와 야크'

12·3계엄 때 707특임단장으로 부대원을 국회에 난입시켜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현태(육사56기) 대령이 김 대장의 중대 후임 소대장이었다.

"당시 저는 중위였고 김 대령은 소위로 여섯 살이나 어렸는데도 육사 출신이란 자부심이 강해서였는지 의견 충돌이 잦아 힘이 좀 들었습니다." 

해병대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보직 해임된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과도 인연이 깊다. 소위 임관 후 헌병 병과를 받고 육군종합행정학교 헌병교육단에 들어갔을 때 해병대 중위로 입교한 박 대령을 만났다. 해병대가 속한 해군엔 헌병교육기관이 없어 교육을 육군에 위탁하고 있었다. 박 대령은 해병대 보병 소대장을 2년 한 후 중위 때 해병대 헌병으로 전과했었다.

"당시 박 대령은 중위로 저보다 한 계급 높았지만 나이도 같고 법대(경북대) 출신 학사장교란 공통점이 있어 5개월간 함께 교육을 받으며 친해졌다."

당시에도 박정훈 중위는 강직하고 답답할 정도로 참군인이었다.

"근무 마치면 동기들과 한잔할 법도 한데 언제나 6시면 퇴근했어요. 고려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다 받은 것도 한 시도 허투루 쓰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원사까지 30년 근속한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훗날 박 대령의 결혼도 김 대장의 중매로 이뤄졌다고 한다. 

"박 대령이 채 해병 순직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려다 고초를 겪을 때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김 대장은 헌병수사관으로 육군본부 중앙수사단에 근무하면서 장성급만 40여 명을 수사해 기소했다. 별을 100개 가까이 떨어뜨린 셈이다.

"요즘에도 자격이 안 되는 군인이 별을 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다시 오르막이 있어 봉우리는 봉우리로 이어져 산이 된다. 인생도 등산과 같다. 잘 나간다고 자만하다 잘못된 선택으로 추락하는 인생도 있고, 소신을 지키다 고초를 겪고 다시 명예를 되찾은 삶도 있다. 

"산이 산으로 이어져 산맥이 되니 우리 삶도 결국은 백두대간처럼 뻗어나갈 겁니다."

전국의 산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고 산맥과 물줄기를 손금 보듯 꿰뚫는 김 대장은 40년 등산에서 체득한 것을 큰별산악회에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다. 산행 가는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친절한 산(山)해설사가 되고, 질문을 받으면 인문지리 1타강사가 되고, 산행 중엔 믿음직스런 리더가 된다. 

유명산에 오르기 전. 압줄 큰별산악회 김영미(부총무), 박미란(송종운 회장 부인), 양덕금(산대장), 이남훈(운영위원장), 고호경(산대장), 뒷줄 이채린(회원), 박정배(회원), 임가본(회원), 김주한(총무), 김평진(산악대장), 송종운(회장), 이현주(회원, 강서미래포럼 대표), 이성은(산대장), 반창병(큰별나눔봉사회 이사), 김도헌(회원), 천송이(산대장)
유명산에 오르기 전. 압줄 큰별산악회 김영미(부총무), 박미란(송종운 회장 부인), 양덕금(산대장), 이남훈(운영위원장), 고호경(산대장), 뒷줄 이채린(회원), 박정배(회원), 임가본(회원), 김주한(총무), 김평진(산악대장), 송종운(회장), 이현주(회원, 강서미래포럼 대표), 이성은(산대장), 반창병(큰별나눔봉사회 이사), 김도헌(회원), 천송이(산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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