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동화' 〈성냥팔이소녀〉 이후 180년,

'영화' 〈전태일···〉 이후 30년이 지나도

중대재해가 사라지지 않는 무서운 '실화'

1996년 신입생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데모'란 걸 해봤다. 연세대에서 촉발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됐고 부산에 있던 나도 선배의 권유로 동참하게 됐는데 어쩌다 친구와 선두에 섰다. 교문 바로 뒤 '넉터'까지 밀리다 무력진압으로 아수라장이 되자 친구는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짜증이 났다. '내 처지에 무슨 데모씩이나···' 7남매 다섯째로 학비 걱정에 아르바이트 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는 내게 시위는 사치였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리뷰를 요청받고 찾아 보니 1995년 작이었다. 고3이라 나온 줄도 몰랐고, 알았다 해도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전태일도 데모만큼이나 내겐 사치였을 테니. 잘 모르면 그렇게 된다.

"근로기준법을 쉽게 알려줄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한자로 도배된, 근로기준법이 명시된 책 앞에 전태일은 절망했다. 대한민국 노동운동사(史)는 전태일 전과 후로 나뉜다. 그의 죽음에 각성한 대학생들을 필두로 지식인들이 야학을 열어 어린 여공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처지를 세상에 알렸다. 나도 각성해야 하지 않을까. 전태일의 삶과 죽음 앞에선 각성하지 않는 대학생이 사치다. 

동화도 제대로 알면 각성된다. 소년공 출신 이재명 대통령은 "어릴 때 읽은 <올리버 트위스트>가 나이 들어 알고 보니 소년 노동의 잔혹함을 풍자한 작품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소녀>도 산업혁명시대 중대재해를 고발한 작품이다. 성냥의 원료인 백린은 독성이 강해 치명적이었다. 동화가 나온 1845년 당시 성냥 제조에 주인공 안나 같은 여자아이가 대거 동원됐다. 2~3년이면 백린중독으로 턱뼈가 녹아내리고 폐가 망가졌다. 쓰임을 다한 아이들은 퇴직금조로 쥐어준 성냥 몇 통을 들고 거리로 나가야 했다. 안나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성냥불을 켜자 나타난 난로, 음식, 트리, 그리고 죽은 할머니는 백린중독에 의한 환각이었다.

100여 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오빠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공장으로 내몰린 10대 여공('공순이'란 슬픈 이름으로 불렸다)들이 처한 현실도 성냥팔이소녀와 다를 바 없었다. 환풍구 하나 없어 먼지와 유독한 합성섬유 냄새에 하루 15시간 이상 노출되는 닭장 같은 작업장에서 할당을 채우려 각성제까지 맞아가며 잔업을 했다. 폐병으로 각혈하는 여공들을 목도한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에 눈을 떴다. ‘공순이’ 명자는 산재처리는커녕 공장에서 쫓겨나고 노동청에 근로기준법 준수를 촉구하던 전태일마저 해고되고 만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_노찾사 <사계> 中

나의 영혼 물어다 준 평화시장 비둘기 

그 위로 떨어지는 투명한 소나기

다음 날엔 햇빛 쏟아지길 바라며

참아왔던 고통이 찢겨져버린 가지

_mc스나이퍼 <솔아 솔아 푸른 솔아> 中

평화시장 여공들에겐 봄조차 사치였다. 학교 가는 게, 아니 일요일만이라도 쉬는 게 소원이었다. 전태일은 월급을 털어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잔업을 대신했다. 친구들과 '바보회', '삼동회'를 조직해 전단을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어 여공들의 처지를 알렸다. 고용주의 훼방과 경찰의 저지로 날개가 꺽인 전태일은 비장한 결심을 한다. 지키지도 않는 근로기준법을 명시한 책과 함께 분신하기로! 얼마나 간절하면 몸이 타는 고통을 견뎌냈을까? 전태일이 요구한 건 최소한의 생존권이었다. 하루 12시간 근무, 한 달에 네 번 휴일과 생리휴일 보장. 배부른 소리라며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노동청 관료들은 "새마을운동" 운운하며 열정페이를 강요했다. 

전태일의 서사는 워낙 유명하고 극적이라 자칫 진부한 전기영화가 될 수 있었다. 영화는 1975년 인혁당사건으로 수배 중인 영수(문성근)가 4년 전 스스로 역사가 된 전태일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시작된다. 부조리한 현실로부터 도피 중인 영수와 부당한 현실에 맞서 정면돌파 하는 전태일을 절묘하게 대비시켰다. 영수의 현재는 컬러로, 전태일이 과거는 흑백으로 영화교본 같은 교차편집은 몰입도를 끌어올리며 예술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개봉 이듬해인 1996년 백상·청룡·춘사 등 영화제 작품상, 각본상을 휩쓸었으니 인물의 화제성을 넘어 작품성도 인정받은 셈이다. 이창동, 허진호 감독도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으니 전태일에 대한 아티스트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7,000여 명이 십시일반 제작비를 보태 완성한 영화로 엔딩크레딧이 5분이나 돼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전태일을 추모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방증한다. 

아직도 산업현장에서는 일용직, 아웃소싱, 계약직이란 이름으로 보상받지 못하는 희생이 넘쳐난다. 내가 운영하는 노가리OK 단골 중에도 안타까운 산재사고를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삿짐 하다 형광등 파편이 눈동자를 찔러 실명한 동네오빠, 감전사고로 손가락 끝이 타들어가 잘라낸 남편의 옛 사수, 배달일 하다 과로로 쓰러졌는데 코로나 때라 '응급실 뺑뺑이'로 끝내 살려내지 못한 친한 언니 남편···. 전태일의 마지막 외침이 있은 지 55년, 영화가 나온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산재는 끊임이 없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

온몸이 타들어가는 순간까지 절규한 전태일은 노래, 영화, 드라마, 웹툰의 영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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