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와 보니까 여기가 더 지옥이야.", "사람을 믿는 건 믿어서가 아니라 기댈 데가 없어 그런거야."  〈오징어게임〉 속 세상은 사람을 돈처럼, 아니 돈보다 하찮게 본다. 믿음과 협력은 살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참가자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바깥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 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오징어게임〉 처럼 평등과 공정을 신념으로 삼았다. '연합'도 그렇게 탄생했다. 각자 같은 조건에서 성과를 내고 공평하게 결실을 나누기 바랐다. 〈배틀그라운드〉가 대박이 나기 전까진 말이다. '시총 24조'와 '자산부자 한국 48위'의 이면엔 소리없이 사라져간 연합과 사람들이 있었다. 상장의 열매는 일부의 몫이었고 실적과 성과를 내지 못한 책임은 가혹했다. 게임(개발) 속 세상은 평등한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현실처럼 높은 계급과 벽이 있었다.

7월 크래프톤은 온라인 IPO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장 배경과 자금 활용 계획, 그리고 비전 등을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의장과 김창한 대표, 그리고 배동근 CFO가 참석했다.

맥 빠진 내용들로 질의응답이 채워졌다. 게임 영상이나 다양한 라인업도 없었고 몇 개의 스크린샷과 인도시장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만 제시됐다. 상장을 앞두고 있음에도 어떠한 예상 결과물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의외였다.

장 의장과 크래프톤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를 받은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테라〉와 〈배틀그라운드〉 2종밖에 없는 회사가 "한국의 디즈니, 워너뮤직이 되겠다"고 단언했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금감원의 정정 요구를 받아들여 '디즈니와 워너뮤직' 코멘트를 삭제하고 희망 공모가를 55만7,000원에서 49만8,000원으로 낮췄다. 그 바람에 예상 공모 규모는 2조, 예상 시총은 24조로 대폭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고평가 논란'이 계속됐다. 상장 첫날부터 하락세를 탄 크래프톤 주가는 이틀 동안 40만6,000원까지 떨어지면서 체면을 구겼다. '따상'은커녕 현재 공모가도 겨우 방어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장 의장은 "〈배틀그라운드〉를 통해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하고 '유니버스'를 만들겠다"며 "크래프톤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 달라"고 호소했다.

바람과는 달리 크래프톤은 시장에서 통하지 않고 있다. 〈배틀로얄〉의 원작자 브랜든 그린이 크래프톤을 떠났다. 그가 만든프로젝트 '프롤로그'도 마찬가지다.

원화 2~3장만 공개된 '한국의 위쳐'를 목표로 한 〈눈물을 마시는 새〉도 개발 상황이나 출시 시점, 게임 형태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비주얼 단계라는 입장을 밝힌 김창한 대표의 말을 해석하면 겨우 '첫삽'을 떴다는 정도다. RPG 1개 개발은 평균 3~5년이 걸린다.

최근 중국의 강화된 '게임관리법'도 장 의장의 예측에서 벗어난 결과다. 크
래프톤 매출 대부분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 텐센트가 서비스하는 〈화평정영〉의 로열티를 받는 크래프톤은 중국 정부의 직접적인 타깃에 포함됐다.

텐센트 대표작 〈왕자영요〉와 함께 크래프톤 〈화평정영〉도 '청소년 이용 제
한' 등급을 받게 됐는데, 여기에 폭력성 등 중국 정부의 기준에 반하는 내용이 나오면 서비스 퇴출까지 받을 수 있다.

게임을 '정신적 아편'이라고 맹비난한 중국은 청소년들 사용률이 높은 게임에 대대적인 제한을 걸고 있다. 〈왕자영요〉 외 많은 게임에 적용될 예정이다. 크래프톤의 미래가 불투명한 이유다.

중국과 인도의 불편한 관계도 문제다. IPO 기자간담회에서 장 의장은 인도시장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매우 어려운 문제다.

해외 대형 게임사들도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하고도 진출에 실패한 인도는 언어와 복합적인 문화, 결제 문제 등으로 단시간에 성과를 내기 힘들다. 그런데도 장 의장과 크래프톤은 현지법인으로 간단히 해결할 것처럼 설명했다.

중국 텐센트 자본이 강하게 들어간 크래프톤이 논란을 이기고 인도에서 성적을 거두는 일은 쉽지 않다. 매출 2위를 기록했지만 그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주춤하고 있다. 신작 〈뉴스테이트〉를 선보인다면 사용자가 나눠질 확률이 높다.

두 개의 신작은 약간의 모습만 공개됐을뿐, 실체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게임이 당장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내부 주요 인력들도 줄줄이 퇴사하고 있다.

크래프톤의 사실상 마지막 한국인 PD도 8월말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상장 도장은 찍었지만 '연합의 힘'이라기보다는 〈배틀그라운드〉 단
독 성과로 얻은, 장 의장에겐 뼈아픈 성공이 아닐까. 세상은 '테라 장병규' 대신 '배틀그라운드 김창한'을 더 기억할 테니 말이다.

성공방정식이 매번 통했던 장 의장에게 '영끌'의 심혈을 기울였던 〈테라〉가 명맥만 이어지면서 상흔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크래프톤연합을 창설하고 변화를 모색할 때도 그랬다. 넷마블 〈테라M〉을 비롯한 테라 IP를 사용한 여러 게임을 쏟아냈지만 흥행에 실패하며 모바일게임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장 의장은 가장 잘하는 것에 힘을 쏟기로 했다. 크래프톤 상장 후 벌어들인 총알을 게임 개발 대신 인수합병(M&A)에 더 쏠 계획이지만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해외시장에선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인터렉티브엔터테인먼트, 일렉트로닉아츠 등이 대형 게임개발사 영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붇고 아시아시장에서도 텐센트를 비롯해 비리비리 등 대형 퍼블리셔가 자금줄을 풀며 IP와 개발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회사들과 비교하면 크래프톤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 개발이나 서비스 경험, 자금력에서 이렇다 할 장점이 없다. 〈배틀그라운드〉를 제외하면 PC온라인게임 플랫폼과 모바일, 콘솔 등 여러 플랫폼에서 쓴맛만 봤다. 여기에 미래를 걸 개발사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장 의장이 게임 개발에 나서며 선언했던 'MMORPG 제작의 명가' 타이틀은 물론 '투자의 귀재'라는 명성을 찾는 것도 소원해 보이는 이유다.

게임개발사가 다양한 게임으로 매출을 보여줘야 하는데도 크래프톤은 여전히〈배틀그라운드〉 하나뿐이다. 장 의장의 '장인정신'은 어디에 있고, 김 대표의  '도전정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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