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자동차를 자기 것인 양 몰고 다녔다. 다리를 다친 이후로 룸펜으로 지내며 지하 셋방에서 종일 빈둥거렸던 아버지는 아침 일찍 차를 몰고 나갔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그는 자주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버지는 종이상자에 쑤셔 박아놓았던 오래된 양복과 꽃무늬셔츠를 꺼내 다림질을 하고 신발장에서 하얗게 먼지가 뒤덮인 구두를 꺼내 광을 냈다. 몸에 살이 쪄서 꽃무늬셔츠와 양복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옷에 몸을 억지로 구겨 넣은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인가는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이고 파마를 했다. 거기에 알이 큰 짝퉁 레이밴 선글라스를 쓰고 한껏 멋을 부렸다.

아버지의 운전 실력은 멋을 부린 것과는 달리 한마디로 솥뚜껑을 운전하는 수준이었다. 도로교통법에 대해서도 무지했을 뿐더러 좌회전 금지나 유턴 같은 기본적인 교통표지판의 의미를 몰랐다.

어쩌면 교통표지판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는지도. 아버지가 운전대를 잡은 이후 한 달이 지나자 주차위반 딱지와 신호위반, 속도위반 딱지가 날아들었다. 다음 달에도 여러 종류의 범칙금 고지서들이 어김없이 날아들었다. 주차위반만 한 달 동안 여섯 번이었다. 주차단속 지역에 일부러 차를 대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 남의 차를 다섯 번이나 긁어먹었다. 아버지는 자동차보험으로 사고처리를 하거나 현금으로 변상을 하면 해결될 일인데, 다섯 번 모두 줄행랑을 쳤다.

"그건 뺑소니라고요. 뺑소니는 가중처벌을 받는단 말예요. 보험으로 처리하면 될 걸 가지고 감옥에 가려고 그러는 거예요?"

남의 차를 긁고 물어주지 않고 도망쳤다는 걸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아버지에게 핀잔을 주었다.

"이 무식한 놈아, 뺑소니가 아니라 재물손괴야. 뺑소니랑 재물손괴는 강간이랑 간통처럼 죄질이나 형량이 천지 차이인 거야. 걸리면 그때 가서 몰랐다고 발뺌하고 물어주면 되잖아. 그러니까 내가 먼저 당신 차 긁었소, 하고 쓸데없이 연락해서 생돈 날릴 일은 없다는 거야."

"잘났어요. 그러다가 언제 한 번 임자 만나서 된통 당할걸요."

기초적인 도로교통법과 교통표지판도 모르면서 형사법은 용케도 잘 알고 있는 게 납득가지 않았다. 남의 차를 긁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집 앞 골목에 주차하면서 담벼락에 차를 박았다. 뒤쪽 범퍼가 깨졌고 다음엔 앞뒤의 균형이라도 맞추려는 듯이 앞쪽 범퍼가 박살이 났다. 조수석 문짝도 찌그러졌다. 조수석 문짝이 찌그러진 며칠 후 운전석 문짝을 전신주에 긁어 좌우 균형을 맞추었다. 이따금 음주운전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운전면허증도 없었다. 차를 살 때 면허가 있냐고 물어보았는데, 아버지는 면허가 있다며 호기롭게 지갑을 꺼내 면허증 비슷한 걸 보여주기까지 했다. 자세히 보지 못해 운전면허증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원동기면허였다. 무려 일 년 동안이나 술을 마시고 무면허로 차를 몰고 다녔는데 검문이나 경찰단속에 한 번도 걸리지 않은 것이 희한할 노릇이었다. 경찰 이 작자들은 한눈에 봐도 범죄형으로 생긴 사내를 잡아 가두지 않고 도대체 어디서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애꿎은 경찰에게로 향했다. 《계속》

 

조혁신 작가는 1968년 의정부에서 태어났다. 인하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계간 《작가들》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뒤집기 한 판》(2007) 《삼류가 간다》(2010), 장편소설 《배달부 군 망명기》(2014), 음악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음악다방》(2019)이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인천일보 지부장을 맡으며 언론노동운동을 했다. 건설현장에서 전기공으로 일했다. mrpen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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