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김상윤 기자
  • Column
  • 입력 2025.06.16 17:58
  • 수정 2025.06.17 09:57

[청년별곡] 김현근 2등항해사···꿈이 있는 남자의 바다는 깊다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구명정에 태우시오!"

1912년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스물넷 목숨을 구한 찰스 허버트 라이트올러(Charles Herbert Lightoller). 그는 2등항해사였다. 

유람선 아닌 상선에서 근무하는 김현근 2등항해사도 제복보다 땀에 젖은 작업복이 익숙하다. 선원의 안전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관리감독과 시설 유지보수에 쓴다. 

배가 경도를 넘을 때마다 시간 개념도 뒤죽박죽이다. 동쪽으로 나아가면 하루가 짧아지고 서쪽으로 움직이면 길어진다.

김 항해사는 시공간이 달라지는 망망대해에서 선원과의 약속인 '선박기준시'와 다른 배와 소통하기 위한 '협정세계시(UTC)'를 동시에 살며 날씨와 파도, 해류까지 고려해 선박의 리듬을 조율한다.

"한 번은 화물이 중심을 잃고 무너져내릴 뻔 했어요. 빨리 인지하지 못했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졌을 거예요."

다행히 해적을 만난 적은 없다. 

"해적을 만나면 전속력으로 달아나고 접근하지 못하게 물대포를 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해상교통노선. 수천의 배가 항해 중이다.
해상교통노선. 수천의 배가 항해 중이다.

처음부터 항해사를 꿈꾼 건 아니다. 공부를 곧잘 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등록금 부담이 덜한 학교를 찾다 해양대에 들어갔다. 3년간 승선하면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도 솔깃했다. 하지만 바다는 녹록지 않았다.

"가장 힘든 게 외로움이었어요."

그럴 땐 삼촌뻘 되는 선원들과 갑판에서 족구를 했는데 하나뿐인 공이 바다에 빠질까 밧줄로 묶어두고 찼다. 그땐까진 놓치는 게 공뿐인 줄 알았다. 

"바다에선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는 것이 많다. 아무도 너를 지켜주지 않는다!"

선장의 지엄한 경고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장은 멘토이자 롤모델이 됐다. 

항해와 안전에 몰입하는 동안 어느새 3등항해사는 2등항해사가 됐다. 마음 속에 무지개가 피어났다.

"최선을 다하고 바라본 세상은 선물 같았어요. 중요한 건 마음이었죠."

아무리 긴 항해도 정박의 시간이 왔고 항구에 내리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휴가를 받고 평소 가보고 싶었던 바르셀로나 대성당을 목도하고 나의 항해가 누군가에게는 꿈이라는 걸 깨달았죠."

대성당 앞에서 '인생의 항로'를 정했다. 

언젠간 김 항해사도 선장이 돼 2등, 3등 항해사에게 가르침을 줄 날이 올 것이다. 현실과 타협해 시작한 승선이 책임과 사명의 항해가 되니 마음은 거친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꿈이 있는 항해사의 바다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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