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어>는 거장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이자
그의 페르소나(persona)인 조재현이
이후 동행하는 다수 영화에서 보인
캐릭터의 전형이 된 작품이다.
김기덕은 <악어> 이전에 어떤 연출 수업도 받은 적이 없다. 몇 편의 시나리오작업을 통해 다수의 공모전에서 입상한 후에 <악어>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화려하게 충무로에 입성한다.
신입 감독의 패기에 찬 <악어>는 군더더기 없이 시원한 전개와 등급 따위는 쌈싸먹은 높은 수위를 자랑한다. 한강에서 노숙으로 살아가며 자살자의 지갑을 털어 유가족을 협박하고, 여자(현정)는 살렸다가 욕정을 채우는 데 이용한다. 아이에게 앵벌이를 시키고 사기야바위로 행인들의 돈을 뜯는 등 이야기는 밑바닥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하류인생을 다루고 있다.
게다가 악어(조재현)는 여성, 노인 가리지 않고 폭력을 일삼고, 도박에 강간에 그런 쓰레기가 없다. 그런 인면수심의 악어가 후반부에 자신이 살려 준 현정을 동정하며 갑자기 분위기 멜로에 사적 복수까지 감행한다.
억측에 가까운 전개로 영화는 산으로 가는 듯하지만 동반자살의 순간에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악어의 발악으로 치기어린 데뷔작 <악어>는 막을 내린다.

김기덕은 <악어> 이후 <섬>, <사마리아>, <빈집>, <뫼비우스> 등 세계 3대 영화제(베니스·칸·베를린)가 인정한 훌륭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조재현의 연기는 프랑스 누벨 바그(La Nouvelle Vague) 대표 감독 레오 까락스(Leos Carax)의 페르소나 드니 라방(Denis Lavant)을 연상시키는 날것의 페이소스가 진하게 묻어 있다.
김기덕, 조재현의 미투스캔들만 아니었어도 몰입해서 봤을 것이다. 아티스트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는 사뭇 다른 생각이 든다. 조재현의 안하무인 막장연기가 '연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가학적인 스토리, 폭력적인 서사는 '김기덕 감독의 창작물이 아닌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까?'도 생각했다.

심지어 현정 역의 우운경은 과연 그들의 여배우를 다루는 ‘나쁜 방식’으로부터 자유로웠을까? 예쁘고 재능있는 신인배우가 <악어> 이후 필모가 단절된 것도 그 때문일까? 왜 영화를 보면서 이런 의심을 해야 하나! 예술적 성과를 핑계로 인권과 도덕이 희생돼선 안 된다.
얼마 전 미투운동으로 처벌받은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도 제작자로서 이룬 성과와는 상관 없이 미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구 퇴출됐다. 김기덕 역시 한국영화계서 더이상 설 자리가 없자 우즈벡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코로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한때 충무로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는데 얼마나 비참한 말로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