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하게 꺼내 입은 겨울옷에서 쿰쿰함이 올라왔다. 이른 겨울이 준 게으름이다. 감악도 그랬다. 작별인사도 못 한 채 겨울을 입었다. 알록달록 단풍을 대신한 겨울 풋내가 낯설지만 감악의 절경은 그대로다. 가을과 이별 중인 감악을 걸었다.

운계폭포절벽은 사람의 얼굴 모양과 흡사한 단면이 있다. 커다란 코와 작은 코, 무심한 듯 다문 입까지 각도에 따라 다르지만 해가 강한 오후에는 그 느낌이 더 와 닿는다.
이별도 같은 곳을 보는 것이다. 서로의 얼굴을 보면 참을 수 없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물에 앞이 흐려진다. 가을과 이별은 너무 급했고 푸릇한 녹색은 버려진 선물 마냥 낯설다. 그렇게 우린 이별하고 산다.

떠나간 마음을 달래기에 가을은 짧다. 푸른 낙엽에 마음이 무너진다. 통증을 작은 돌로 달래본다. 바람이 불지만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별의 슬픈 돌들은 탑이 됐고 상처는 굳은살이 됐다. 미련에 발걸음이 무겁다.
어딜 보아도 감악이다. 절경을 하나로 모아 보니 병풍이 따로 없다. 누가 언제 쌓은 지 모르는 간절함만 묵묵히 운계폭포를 지켜본다.

누군가 쌓은 돌탑이 해를 피해 미동조차 없이 밤을 기다린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비결이 궁금하다. 간절함! 돌 하나마다 가득한 마음이 무겁다. 누군가의 마음은 저리도 고요한데 이별 따위에 우는 내가 밉다.

같은 방향을 보지 않는다. 고개 돌린 사람은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꽉찬 하늘. 바람도 보이지 않는다. 눈물을 훔친 후 절경에 위로받는다. 숨 차오른 감악에 흔들리던 마음도 차분해진다. 폐를 가득 채우는 마지막 가을의 위로가 선선하다.
멀리서 바라본 감악전망대. 한 눈에 들어오는 절경이 시원하다. 급하게 이별한 가을산엔 푸른 낙엽이 지천이지만 벌거숭이산은 아니라 위안해 본다.

운계폭포를 따라 오르다 법륜사를 만났다. 헉! 숨이 절로 차오른다. 작은 물소리마저 숨죽이는 이곳은 사계절 아름다움을 품어준다.
가을의 담담한 떠남이 아름답다. 그래도 야속하다. 뭐가 급해 이리 빨리 갔을까. 사람 하나 없는 감악이별산은 서럽도록 푸르다. 녹색은 추억이다. 상처가 아물 듯 조금씩 사라진다. 어제와 다른 오늘. 기도하며 이별을 추억한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이 눈부시다. 이별의 힘듦도 잠시 새로운 인연에 다시 두근거린다. 누구나 이별하지만 인연도 그렇다. 여러 물길이 흘러 하나의 강이 되듯 만남도 그렇다. 작은 마음이 모여 인연이 되고 모인 감정은 다시 이별을 맞는다. 우리가 산을 찾고 떠나듯이.

산길에서 만난 백호. 반갑다. 완성도가 아쉽지만 잠깐 쉬어갈 핑계는 된다.
어흥! 운치에 젖어 떨군 고개가 절로 들린다. 가을이별이 대수냐. 감정은 그렇게 흔들리는 거다. 자신을 기억하라는 백호의 당당한 자태에 피식 웃음이 난다. 상처는 언젠간 아문다. 그래도 이별과 온전히 이별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