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학 아워홈 회장
구자학 아워홈 회장

태종 이방원의 셋째아들 충녕은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살피는 성군이 됐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자격루, 측우기, 혼천의 등을 탄생시킨 세종은 왕자가 아니었다 해도 타고난 창조력과 측은지심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리라. 구인회 LG 창업주의 삼남 구자학 역시 오너 2세가 아니었다 해도 창의성은 '낭중지추'가 됐을 것이다. 드봉·페리오·플라스틱PBT·램버스D램반도체 등 대한민국 산업에서 보여준 '최초'의 신화로 알 수 있다. 창업을 했어도 큰 기업을 일구었을 것이다. 아워홈은 그 증거다. 일개 사업부를 2조 원대 글로벌기업으로 키워냈다. '국민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던 그는 국민의 평균 키가 부쩍 자란 것에 보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은퇴하면 경기도 양평에 작은 식당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커져 버렸어요. 그동안 같이 고생한 우리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

구자학(具滋學) ㈜아워홈 회장이 12일 별세했다.

구 회장은 1930년 7월 15일 경남 진주시에서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진주고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해 1959년 소령으로 전역했다.

군복무 시절 6·25에 참전했으며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호국영웅기장 등 다수의 훈장을 받았다. 이어 미국 디파이언스대(Defiance College) 상경학과를 졸업했으며, 충북대 명예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전하는 모습
1981년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전하는 모습

"남이 하지 않는,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당시 "나라가 생사의 기로에 있다. 기업은 돈을 벌어 나라를, 국민을 부강하게 해야 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일념으로 산업 불모지를 개척했다. 

해사 출신으로 6·25 참전과 다수의 훈장이 증명하는 '보국'에 헌신한 남다른 경력에서 이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제일제당, 중앙개발, 럭키(LG화학), 금성사(LG전자), 금성일렉트론(SK하이닉스), LG건설(GS건설)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일선에서 뛰었다. 

1980년 ㈜럭키 대표 때 구 회장은 기업과 나라가 잘 되려면 기술력만이 답이라고 여겼다. 세계 석유화학시장 수출 강국인 일본과 대만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개발에 역량을 집중했다. 

"우리는 지금 가진 게 없다. 자본도, 물건을 팔 시장도 없다. 오직 창의력과 기술, 지금 우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내 실천해야 한다." 어느 공장을 가도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처럼 기술력을 중시했던 구 회장은 "남이 하지 않는 것, 남이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가 걸어온 길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는다. 

1981년 당시에 없던 잇몸질환을 예방하는 '페리오치약'을 개발했으며, 1983년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PBT'를 만들어 한국 화학산업의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1985년에는 화장품 '드봉'을 국내 최초로 미국, 싱가포르 등에 수출했다. 1989년 금성일렉트론에서는 세계 최초로 '램버스D램반도체'를 개발했으며, 1995년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굴지의 일본기업들을 제치고 국내 업계 최초로 일본 플랜트사업을 수주했다. LG의 근간이 된 주요사업의 시작과 중심에는 늘 그가 있었다. 

1983년 한∙독 수교 100주년 기념사업 행사장에서 독일 기업인을 맞이하는 모습
1983년 한∙독 수교 100주년 기념사업 행사장에서 독일 기업인을 맞이하는 모습

일개 사업부를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구 회장은 2000년 LG유통(GS리테일) FS(푸드서비스)사업부로부터 분사 독립한 아워홈의 회장으로 취임해 20년 넘게 아워홈을 이끌었다. 그동안 아워홈 매출은 2,125억 원(2000년)에서 1조 7,408억 원(2021년)으로 8배 이상 성장했다. 

사업포트폴리오도 다양해졌다. 단체급식과 식재유통으로 시작한 아워홈은 현재 식품사업, 외식사업과 함께 기내식, 호텔업까지 확장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종합식품기업으로 거듭났다. 

LG에서 화학, 전자, 반도체, 건설,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핵심사업의 기반을 다진 경영자가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 독립할 때 주변에서 의아해 했다. 그런 사업부를 어떤 도움도 없이 2조짜리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구 회장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 미국 유학 중 한인마트에 김치를 담가주고 용돈벌이를 했다. LG건설 회장 땐 LG유통 FS사업부에서 제공하는 단체급식에 개선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 

2000년 아워홈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맛과 서비스, 제조, 물류 등 모든 과정을 챙겼다.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혜안이 있었다. 단체급식사업도 화학, 전자와 같이 첨단산업분야에 못지 않은 R&D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단체급식업계 최초로 2000년 식품연구원을 설립했다. 임원들은 "단체급식회사가 대량생산만 하면 되는데 연구원까지는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구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2017년 지수원 개관식
2017년 지수원 개관식

"국민이 건강해야 기업도, 나라도 건강하다"

아워홈 연구원은 설립 이래 지금까지 1만5,000건이 넘는 레시피를 개발했으며, 연구원 100여 명이 매년 300여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업계 최초 노로바이러스 조사기관, 축산물위생검사기관, 농산물안전성검사기관 등 공인시험기관 역할도 하며 국내 안전 먹을거리 생태계 조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생산·물류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 나섰다. 2000년대 초 구 회장은 미래 식음서비스산업에서 생산과 물류시스템이 핵심역량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70세 나이에도 생산물류센터 부지를 찾아 전국을 돌았다. 현재 아워홈은 업계 최다 생산시설(9곳)과 물류센터(14곳)를 운영하며 전국 어디든 1시간 내 신선한 식품을 제공하고 있다. 

콜드체인시스템이 물류 핵심요소로 대두되기 전에 신선물류 시스템을 누구보다 빠르게 구축했다. 2016년에는 업계 최초로 자동화 식재 분류 기능을 갖춘 동서울물류센터를 오픈해 업계 최고 수준의 물류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해외진출도 빨랐다. 2010년 중국 단체급식사업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청도에 식품공장도 설립했다. 다양한 중국 식재료를 원활히 수급, 직접 생산해 단체급식의 품질을 올리기 위해서다. 

2017년 베트남 하이퐁법인을 설립해 베트남시장에도 진출했으며, 2018년에는 HACOR를 인수하며 기내식사업에도 진출했다. HACOR는 LA공항에 취항하는 항공사들에 기내식을 납품하고 있으며 북미시장 단체급식, 식품사업 확대를 위한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2021년에는 국내 업계 최초로 미국 공공기관 식음서비스 운영권을 수주했다. 미국우정청(USPS)과 구내식당 위탁운영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유럽시장 진출을 위해 폴란드 법인도 설립했다.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먹을거리로 사업을 영위하는 식품기업은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짊어져야 한다." 구 회장은 '국민 건강'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았다. 

1980년대 럭키 대표 시절 출시한 '드봉'과 '페리오' 등 생활브랜드 역시 '국민의 건강한 삶'에 대한 고민에서 탄생했다. 

"반세기 넘게 대한민국과 함께 정말 바쁘게 달려왔다. 오직 잘 사는 나라, 건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동안 같이 달려와 준 직원들에게 감사드린다." 

와병에 들기 전 아워홈 경영회의에서 구 회장은 이런 얘기를 했다. 

"요새 길에서 사람들을 보면 정말 커요. 얼핏 보면 서양사람 같아요. 좋은 음식 잘 먹고 건강해서 그래요. 불과 30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나름 아워홈이 공헌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합니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