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소녀가 연두색 침낭을 배 한가운데 펼치고 배에 등을 기대고 앉아 책을 꺼내 펼쳤다. 그녀 건너편에 우리 부부가, 배의 앞머리에 선장과 헝가리인들, 후미에 돛을 관리하는 아랍인이 자리를 잡았다. 강기슭에는 파피루스나무가 나일에서 부는 바람의 결을 따라 흔들렸다.

베두인족이 사는 흙집과 모래언덕 사이로 집시아이들이 옷을 벗고 놀다가 우리 배를 따라 좇아오며 원 달러, 원 달러 외치며 손을 내밀었다. 돛의 그림자가 짧아졌을 때 베두인 남자가 점심을 준비했다. 에이쉬와 잘게 썰어 놓은 야채에 향료를 뿌린 것을 넓은 그릇에 담아 배의 중앙에 내놓았다. 캐나다 소녀가 에이쉬를 집어 사등분 한 후 빵 사이를 벌려 야채를 집어넣고 먹기 시작했다.

선장의 주선으로 각자 소개를 했다. 열아홉 살이라는 캐나다 소녀는 쾌활했고 헝가리인은 남매였다. 정재는 우리가 허니문을 온 것이라 말했다. 캐나다 소녀가 손뼉을 쳤다. 피리리리. 선장은 입술로 새소리를 냈다. 아마존 앵무새 소리라 했다. 선장은 아마존에서 태어났다고 덧붙였다. 객실이 있는 커다란 유람선을 생각했던 나는 마주앉은 캐나다 소녀의 목덜미에 난 자잘한 점까지 보이는 비좁은 펠루카여서 당황했다. 게다가 캐나다 소녀를 비롯한 헝가리 남매는 침낭을 준비해 왔고 펠루카에 올라타자마자 침낭을 꺼냈다.

카이로의 호텔에 짐을 보관한 우리는 작은 배낭에 바람막이점퍼 하나도 챙기질 않았다. 카이로에서 들끓는 태양에 지쳤던 나는 태양을 가릴 용도로 얇은 긴소매 셔츠 한 장만 챙겨왔다. 이곳 여행 경험이 있다는 정재의 말만 믿고 여행 짐을 쌀 때 론리 플래닛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해가 지자 나일의 수온이 떨어졌고 습기를 머문 바람이 차가웠다. 선장은 펠루카를 강기슭에 정착시키고 돛을 내렸다. 배에 네 개의 나무기둥을 세우고 천막을 쳤고 후미에 다시 칸막이를 쳐주고 우리를 그곳에서 따로 자라고 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베두인 남자는 우리가 허니문이라는 선장의 설명을 듣고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뭐라뭐라 했다.

선장의 말로는 라마단 기간에는 일출에서 일몰까지 금욕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선장은 맥주를 주었다. 돛을 관리하는 베두인 남자는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 그는 기도시간마다 배 위에서도 메카 방향을 잡아 기도를 했다.《계속》

박정윤 작가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200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목공소녀》 경장편 《연애독본》 장편소설 《프린세스 바리》 《나혜석, 운명의 캉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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